북한 왜 거칠어졌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북한의 대남정책 담당자와 관영 매체들의 말이 거칠다. 6.15 남북공동선언 6주년 행사를 목전에 두고 막말에 가까운 대남 비난과 내정 간섭조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은 10일 평양의 한 집회에서 "한나라당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으면 철도.도로 연결과 금강산.개성공단 사업이 파탄 날 것"이라고 했다. "남조선은 물론 조선반도 전체가 미국이 지른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것"이란 위협성 주장도 했다. 그는 14일부터 열릴 6.15 공동행사 민간대표단장으로 광주에 올 인물이다.

이에 앞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의 아태평화위는 2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구속에 대해 '무조건 석방'을 주장하면서 우리 사법부를 '범죄자'로 몰아붙였다. 군부도 이런 분위기에 가세했다. 공군사령부는 11일 미군이 북한 영공을 정찰했다며 "단호한 징벌을 경고한다"고 했다.

일부 혼선 움직임도 나타난다. 12일 공개된 6.15 공동행사 북측 당국 대표단장은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회장이다. 북한이 1998년 6월 대남 민간교류 전담창구로 만든 기구지만 이번에는 당국 대표기구로 내세웠다. 당국이 주도적으로 6.15 행사를 치르자고 주장하던 북한은 지난해 8.15 때 노동당 비서(김기남 혁명사적 담당비서)를 파견했던 것과 달리 격을 낮췄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남측 당국 대표단장으로 정한 정부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6일 제주에서 끝난 12차 경제협력추진위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은 "비누.신발 원자재 제공에 합의해 주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해 남측을 황당하게 했다. 북한은 회의 시간에 늦게 나타나고, 환송만찬 때는 이 장관을 비롯한 남측 주요 인사를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방북 문제를 협의할 3차 실무접촉도 당초 예정됐던 지난주 열리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초청한 행사 날짜(27일)를 보름 앞두고 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달 25일 열차 시험운행 무산에 따라 대북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북한 대남라인과 군부 등이 책임 문제를 놓고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5.31 지방선거 결과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