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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도시’ 울산, 3.1절 100주년 맞아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

중앙일보

입력

내년 3월 1일에 세워질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시안. 앞면. [사진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내년 3월 1일에 세워질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시안. 앞면. [사진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그 사람, 일본말로는 겐빼이고 조선말로 헌병대죠. 그런데 칼로 이거만 한 거를 차고…, 그 사람은 우리 같은 거 뭐 지 맘에 조금 틀리면 그 자리에서 목 쳐버려도 아무 상관 없어요.”

인천·창원 등 전국 5개 도시에 노동자상 #부산에서는 설치 두고 지자체와 갈등

1943년 러시아 사할린 나이부치 탄광에 강제징용된 후 51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울산 북구 농소 출신 고(故) 김동선(1921년생)씨의 생전 구술 기록이다.

내년 3월 1일, 3·1절 100주년을 맞아 울산에 김씨 같은 강제징용 노동자를 추모하는 노동자상이 설치된다.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2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설치 계획을 밝히고 노동자상 시안을 공개했다.

이 위원회는 민주노총·한국노총 울산본부와 교육희망울산학부모회 등 14개 시민사회단체,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등 4개 정당으로 구성됐다.

내년 3월 1일에 세워질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시안. 뒷면. [사진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내년 3월 1일에 세워질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시안. 뒷면. [사진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위원회가 공개한 노동자상은 가로 4m, 세로 4m의 기단 위에 높이 2m의 화강석 벽면을 세운 모습이다. 벽면 앞에는 곡괭이를 든 19세 전후의 깡마른 노동자가 서 있다. 벽면 뒤쪽은 동굴 단면처럼 연출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담았다.

앞면 벽면에는 ‘일제강점기 인권 유린과 노동 착취! 기억해야 할 강제징용의 역사입니다’라는 문구가, 뒷면에는 남한에서 강제징용된 노동자 숫자와 울산 지역에서 징용된 노동자 숫자가 새겨져 있다.

작품 제작을 맡은 이원석 작가는 “징용 당시 신체에 일본의 사과, 전범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현재 어르신들의 의지를 이입했다”며 “동굴 속 인물상이 1m 높이에 있어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어야 볼 수 있는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추모의 의미를 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노동자상을 내년 3월 1일 울산 남구 신정동 울산대공원 분수대 앞에 설치할 계획이다. 1억2000만원가량의 제작·설치 비용은 조합원과 울산시민의 모금, 크라우드 펀딩(소셜 미디어 등에서 대중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마련한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 현황. [사진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 현황. [사진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

지난해 8월 서울 용산역 광장을 시작으로 올해 5월까지 인천·제주·창원·부산 등 전국 5개 지역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설치됐다. 이보다 앞선 2016년 8월 처음으로 세워진 노동자상은 일본 교토 단바 광산 앞에 있다.

지난 4월 30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부산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부산 동구청이 외교 문제를 이유로 한 달 만에 강제 철거하면서 노동자상 건립 추진 단체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배문석 위원회 사무국장은 “3·1절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년 설치를 계획했다”며 “울산이 일제강점기 이후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외부 이주민이 늘어나고 산업 발전에 치중하면서 다른 지역보다 역사적 논의가 늦어졌지만 이제라도 노동자의 뿌리를 찾겠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일본·사할린·동남아시아 등지에 강제징용된 노동자 수는 6000~1만8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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