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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내친구] 보너스 액수가 갈등의 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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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토고 사태'는 부패한 정권, 이와 결탁한 축구협회, '돈맛'을 알아버린 선수들, 상업화로 치닫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토고 대표선수들은 1월 이집트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앞두고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바 있다. 이들은 "월드컵 본선 진출과 네이션스컵 출전에 따른 보너스를 달라"며 한때 대회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적절한 보상을 약속받고 대회에 출전하긴 했지만 사실상의 '태업'으로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했다. 토고축구협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스티븐 케시 감독을 경질하고 오토 피스터 감독을 데려왔다.

토고축구협회장인 록 냐싱베는 38년간 토고를 철권 통치하다 지난해 죽은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토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진압하고 집권한 포르 냐싱베 현 대통령의 동생이다. 냐싱베 회장은 토고가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그는 FIFA가 최빈국에 지원한 축구 발전 지원금과 스포츠 마케팅 회사 'PMD 컨설팅'과의 계약금 등 수십억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보너스를 받지 못한 토고 선수들은 이웃 가나가 월드컵 보너스로 선수당 2만 달러(약 1900만원)에 집과 자동차까지 줬다는 얘기를 듣고 불만이 폭발했다.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아데바요르(아스널), 쿠바자(소쇼), 아가사(메츠) 등은 유럽 프로리그에서 거액을 받고 뛰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1인당 출전수당 15만5000유로(약 1억9000만원)와 승리수당 3만 유로를 요구했다. 기자가 2월 토고에서 만난 대표선수 출신 바타나 모테스트(26)는 "한 달에 6만 세파프랑(약 11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토고 월드컵대표들은 국내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100년간 받을 연봉보다 많은 금액을 한번에 달라고 한 것이다. 토고축구협회는 출전수당 12만 유로와 승리수당 3만 유로를 제시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월드컵 출전=돈'이라는 공식을 선수들에게 입력시킨 FIFA도 책임이 크다. 이번 대회 우승 배당금은 2450만 스위스프랑(약 188억원)이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해도 700만 스위스프랑을 받는다. FIFA는 1조1000억원이 넘는 방송 중계권료를 받으며 15개 공식 파트너로부터 1개사에서 7000만 달러(약 670억원)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FIFA가 주도한 '돈 잔치'가 월드컵 사상 초유의 '선수 파업으로 인한 감독 팀 이탈' 사태를 만든 것이다.

레버쿠젠=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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