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제주말을 몰라 어른과 대화를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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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투리랜(라고) 말허믄 안 되쥬(말하면 안되지). 우리는 '제주어'라고 골아야(말해야) 돼."

제주사투리 실력을 자랑하는 70대 노인이 '제주말'을 가르치는 강사로 나섰다. 제주시가 4년 전 제주방언구사 기능인(제주시 무형문화유산 2호)으로 지정한 고봉만(75.제주시 건입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고씨는 올 4월 14일부터 매주 한차례씩 제주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직장인.주부 등을 대상으로 제주말 솜씨를 뽐내며 토속 제주어를 가르친다. 구수한 입담을 섞어 "반찬은 촐레, 채소는 송키, 호미는 골괭이…"라는 그의 해설을 듣는 수강생들은 절로 감탄한다.

그의 제주어 실력에 대한 학계의 평가도 남다르다.

정규 교육을 받지않아 방언구사에 왜곡됨이 없고, 청력.기억력이 좋은 데다 제주에만 남아 있는 '.'(아래 아)와 '△'(반치음)을 제 음가대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아픈 과거가 오히려 제대로 사투리를 구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950년대 군복무 시절 교사 출신인 동기생에게 한글을 배워 깨우친 게 그가 받은 교육의 전부다.

제주시 영평하동이 고향인 그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밭일을 하거나 품을 팔면서 청춘을 보냈다. 뒤늦게 농산물 유통업으로 성공해 5년 전까지 ㈜제주종합시장 대표를 지냈다.

"'제주 고씨'가 아닌 옛 독립국인 탐라 고씨 전서공파 79세 손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그는 고.양.부 삼성(三姓)재단이사장과 마을 향토문화보존회 회장을 지내는 등 뿌리찾기와 지역문화 지키기에도 열성이다.

그는 '제주 최고의 웃어른'으로 일컬어지던 윤태수 할머니의 막내아들이다. 그의 효도 덕분에 그의 어머니는 4년 전 112세 국내 최고령의 나이로 장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이 제주말을 쓰지 않는 건 어른과 대화의 시간이 없다는 거지요. 영어교육만 시킬 줄 알고 정작 우리 말과 글은 죄다 내팽개치면 어쩔 셈인지…. 말을 버리면 자기 정체도, 역사도 모두 사라진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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