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쓰레기 "우리마을엔 못 들어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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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죽음의 재」로 알려진 핵폐기물 처리장이 우리고장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우리 고장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 아닙니까.』『경북 동해안에 핵폐기물 처리장이 설치된다』는 소식이 2월말에 전해지자 동해안 청정해역을 유일한 생활터전으로 삼고있는 연안주민들이 사활을 건 반대운동에 나섰다.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알려진 곳은 경북 영덕군 남정면 우곡동,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영일군 송라면 지경리 등 3곳. 이곳 주민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마을별로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 진정·시위 등 맹렬한 저지운동을 펴고있다.

<반대운동>
특히 이달 들어『영덕군 남정면 우곡동이 당국의 종합평가 후 최적지로 선정됐다』는 소문이 떠돌자 남정면 주민들은「핵폐기물 처리장 설치반대대책위」(위원장 김의남) 를 구성, 12일 오전 10시 2천5백여 명이「동해안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 결사반대 궐기대회」를 갖고 당국의 계획이 백지화 될 때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또 영덕군 애향단체인 영근회(회장 김백규)는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구호와 내용의 포스터·전단 등 홍보물 2만장을 인쇄, 가가호호 돌리는 등 범국민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근회와 영덕 핵폐기물 처리장설치 반대투위(위원장 김병강)는 19일 오후 2시30분쯤 영덕국교에서 2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궐기대회를 갖고 오후 3시30분쯤엔 동해안고속화도로로 가 가두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저지되기도 했다.
울진군민들도 지난달 28일「핵폐기물 처리시설 설치 절대불가」를 주장하는 건의서를 경북도에 냈고 후보지의 또 한곳인 영일군 송라면 주민들도 술렁이고 있는 실정이다.

<핵폐기물 실태>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핵폐기물에는 40여종의 주요방사능 물질이 포함돼있다. 지난해 말까지 국내핵발전소에서 나온 중·저 준위 핵폐기물은 2백ℓ들이 1만5천 드럼에 이르며 고리원자력발전소의 경우 1만3천여 드럼이 쌓여 90년에 가면 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
현재 가동중인 국내 8기의 핵발전소 중 가장 오래된 고리 1호기가 핵폐기물 저장능력의 한계가 오는 90년, 월성 1호기는 91년으로 사실상 영구처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중·저 준위 폐기물의 경우 적어도 3백년 이상, 핵연료는 10만년동안 엄격히 관리해야하는 문제점이 뒤따르고 있다. 영국의 경우 바다 밑 지층 속에 핵폐기물을 묻은 다음 1백만년 동안 안전성 평가를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시스팀까지 갖추고 있다.

<설치계획>
동자부는 핵폐기물 영구처리장 건설을 위해 동해·서해·남해안 10개 지역을 놓고 지난해부터 조사작업을 벌여 암반의 강도가 강하고 지하동굴설치가 가능한 경북 동해안 3개 지역을 적지로 선정했다.
당국은 3곳 중 1곳을 연말까지 후보지로 확정, 92년6월까지 부지 1백50만평을 사들여 지하동굴처리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예상피해>
동해안에 핵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설 경우 직·간접피해를 보는 지역은 포항∼울진에 이르는 청정해역 1백32.8km연안.
특히 주민들은『경남 양산군 고리면 월내리 해수욕장이 70년대까지만 해도 유명한 피서지였으나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1.5km의 백사장이 못쓰게되고 조류소통이 안돼 양식장이 폐쇄되는 등 자연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돼 2천3백여 가구 주민들이 지금까지 피해진정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해안주민들은『삼사 해상공원이 개발되고 있는 마당에 핵폐기물 처리장건설은 청정해역의 자연생태계 파괴는 물론, 천혜의 관광자원이 사장되고 지역개발이 침체되는 등 전체주민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동해안 일원의 관광수입은 줄잡아 연간 3백억 원. 동해안의 절경을 끼고 촘촘히 들어서 있는 생선횟집들은 저마다『핵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면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긴다』며『머지않아 장사도 끝장』이라고 실의에 빠져 있다.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있는 가장 큰 이유는 스테인리스 강철로 포장, 동굴 처리된 핵폐기물이 콘크리트로 메워진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식돼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기 때문.
특히 주민들은 당국이 이 엄청난 계획을 극비리에 추진해온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주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주민들이 모르게 추진하는 것은 바로 과거의 권위주의 행정 아니냐는 지적이다. 원전공해가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영덕=이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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