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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성|「M16」이 공권력일순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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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치안본부장이 각 파출소에 M-16소총을 지급하고 화염병으로 공공시설물을 공격하는 자에게는 발포하도록 하겠다는 보도를 읽으면서 얼핏 떠오르는 생각은 학생 한 사람의 죽음으로 정권이 두 번이나 무너지지 않았던가 하는 두려움이었다. 4·19는 마산 앞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군의 시체가 발화점이 되었고 5공의 퇴진은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굳어지지 않았던가.
치안본부장은 세 번의 경고와 한발의 공포를 쓰고 나서 그래도 물러나지 않으면 대퇴부 이하를 쏘도록 한다고 제법 세밀한 발포절차까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위현장을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이면 그런 절차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 것이다.
요즘처럼 격렬한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설혹 경찰관들의 사격술이 출중해서 엉덩이 아래로 명중시킬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광경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5공 정권은 이미 광주에서 그런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6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잘못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한 이처럼 엄청난 조치가 어떻게 그처럼 쉽사리 발표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 공권력의 사용을 자제해왔다. 그리고 공권력은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만 사용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것은 5공 시대의 무절제한 공권력의 행사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있는 우리로서는 현명한 방침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중간평가를 유보하기로 결정한 직후에 정부로부터 갑자기 그처럼 극단적인 형태의 공권력 행사방침이 나온 것을 보면 정부는 이제 국민여론이 그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원칙 면에서는 옳은 판단일지도 모른다. 정국의 안정을 위해서나 민주화 노력의 반전을 방지하기 위해서 현재의 과격한 시위는 억제되어야 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중산층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는 학원과 노사분규의 현장에서 연일 일어나고 있는 폭력사태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공권력의 부재현상을 불만에 찬 시선으로 보아 왔다. 여의도광장에 등장했던 농민들의 죽창과 화염병은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지하철 파업 때는 지하철 노조원들보다 훨씬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많은 서민층들이 고통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가 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이 좀 더 분명한 태도로 폭력을 막고 노사분규를 해소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바라는 법과 질서의 회복과 정부가 생각하는 공권력행사방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부는 공권력이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국민들의 요구는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더 이상 심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총체적인 노력을 해달라는 것이지 발포명령과 같은 공권력의 극한적 행사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기 사용은 폭력시위를 근절시키기보다는 지금수준의 가투를 일거에 도시 게릴라전 양상으로 악화시키고, 국민여론이 과격세력의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그 나마의 기능조차도 발휘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공권력이란 따지고 보면 정부가 정상적으로 사회가 굴러가는데 필요한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위와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기능은 행정기관, 경찰력, 그리고 사법기관이 정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들 공권력의 대행기관들은 오랜 독재정권 아래서 국민을 보호하기보다는 국민을 위압하는 독재자의 힘의 연장으로 이용되고, 민주화운동을 범죄시하는 역할을 떠맡아 온 게 사실이다.
이런 과거 때문에 공권력은 운동권의 공격대상이 되었고 자체의 권위가 손상되었다.
따라서 민주화개혁이 추진되고있는 지금에 있어서 법과 질서를 회복하는 길은 실추된 공권력의 정상적 권위를 회복하는 작업이 이치에 맞다. 공권력을 물리적 힘의 행사로만 착각하는 것은 5공 시대의 발상이다. 그런 방법은 현재의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격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화염병을 의사표시의 주무기로 사용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이들을 철저히 검거해서 법정에 세우는 힘이 공권력이어야지 현장에서 즉결처분하는 것은 공권력의 파산이 아닐 수 없다.
현 정부가 당면한 딜레마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좌경세력 쪽에서는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점점 대담한 폭력시위를 자행하는 추세고 우익 쪽에서는 왜 강공책으로 좌경세력을 억누르지 않느냐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 쪽에서는 좌·우로부터의 그와 같은 압력에 밀려 사회가 좌·우, 보·혁 구조로 양극화하는 것을 막고 민주화개혁을 성취시키는 목표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된다. 그런 자세가 공권력의 확립이 지향할 올바른 길이다.
이와 같은 노력에는 여야 정치인은 물론 민주화의 시발점이었던 6·29를 가능케 해준 국민들도 적극적 지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지금과 비슷한 고비를 잘못 넘겨 두 번이나 좌절되었던 민주화를 이번에는 기필코 성취시켜야 된다는 사명감을 전체 사회가 행동지침으로 삼아야 할 때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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