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새 고립주의 "외국인 기피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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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로운 「외국인 기피증」이 요즈음 새로 미국사회에 넓게 번져가고 있다.
이 병은 일본 등 아시아 몇나라, 유럽우방들이 정당한 방법이든 부당한 방법이든 간에 세계무대의 주도권 싸움에서 미국을 젖히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실시된 몇몇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외치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여론이 강력히 일고있다.
이 여론은 진정한 위협이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미국 내부로부터 오고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있다.
따라서 새로운 외국인 기피증은 지난날 미국의 고립주의를 불러왔던 인종차별주의나 과대망상, 맹목적 애국주의보다는 덜 수치스럽지만 역시 근시안적인 것이다.
새로운 외국인 기피증을 특징짓는 여러가지 태도들을 예로 들어보자.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세계무대에서 한나라의 역할을 결정짓는 것은 단순히 군사력만이 아니라 국부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의 영향력을 결정 짓는데 군사력이 중요한가, 경제력이 중요한가」라는 설문에 3대1로 경제력이 더 중요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또 다른 4개의 여론조사에서는 일본이 가장 부강한 나라로 선정 됐는데 흥미있는 사실은 이 같은 국민들의 생각에 반해 미일의 기업가들은 아직도 미국이 가장 부자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인 47%는 해외주둔 미군을 철수시키는데 동의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경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 개입을 제한하고」 「점진적으로 방위공약을 종결시키며」 「우리의 우방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게 해야한다」고 생각하고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지-ABC방송의 공동여론조사에서 성인의 3분의2가 부당한 무역장벽과 값싼 노동력이 일본 기업들에 부당한 이익을 주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갤럽여론조사는 아시아의 무역상대국들이 미국에 대해 부당한 무역을 하고있으며 관세를 높이 매기고 있다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혔다.
▲미국은 이제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중지해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방위공약을 줄여야 한다고 믿는다. 80%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그렇게 많은 나라를 방위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이 영향력을 잃더라도 우방들이 자신들의 방위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믿는다.
▲워싱턴포스트지-ABC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중 70%가 「미국정부가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일본이 온 미국을 사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갤럽여론조사에서도 70%정도가 미국기업을 해외투자자들이 소유하는 것은 「나쁜 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미국은 미국인이 소유해야한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을 외국인들이 소유함으로써 국가안보에 위험을 준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들고있다.
그러나 기업 및 금융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대다수가 미국내의 해외투자는 좋은 것이며 경제를 부추기고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다양한 여론조사결과 배경에는 소련과의 냉전이 당분간 끝났으며 「레이건」의 군사력증강으로 미국이 어떠한 군사적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졌다는 견해가 깔려있다.
여기에는 또 미국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재정적자·범죄·마약 등과 본격적인 전쟁을 하기 위해 군사비 지출을 줄여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생각도 깔려있다.
여론조사는 미국인들이 소련에서 좋은 방향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음을 믿고있으나 소련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강하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실각 같은 중대한 변화가 크렘린에서 일어날 경우 미국인들의 태도는 극적으로 바뀌어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비지출을 늘리라는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만약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신 외국인기피증」은 맹목적 애국주의 등과 같이 과거와 다를 바 없는 고립주의를 불러올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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