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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졸업식서 생긴 일|전 육 <정치부기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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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1일 태능 교정에서 열린 육사 제45기 졸업식에서는 보통 보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졌다.
노태우 대통령 내외와 내빈·학부형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졸업식은 우수졸업생에 대한 시상, 졸업증서·임관증서 수여 때까지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파격」은 민병돈 교장(중장·육사15기)의 훈시차례 때 일어났다. 연단을 중심으로 왼쪽에 노태우 대통령내외, 오른쪽에 민교장 부부가 앉아 있었다.
훈시차례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 민교장은 시상때 이상훈 국방장관·이종구 육참총장· 「메네트리」미8 군사령관이 노대통령에게 먼저 거수경례를 하고 시상자세를 취했던 것과는 달리 경례 없이 연단으로 나갔다.
민교장은 주머니에서 접혀진 자필 메모지를 꺼냈다. 그는 『존경하는 대통령각하를 모시고…』라는 인사말을 한마디 한 뒤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최근 민주화와 관련한 사회현상을 「가치관의 혼란」「환상과 착각」「염려스러운 일들」 이라고 개탄하더니 이윽고 북방외교를 『적성국과 우방국의 개념을 혼동시키는 해괴한 일』 이라고 비판했다.
또 『누구는 손자병법을 들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책 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이나 하는 소리이고, 군인은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자신은 물론부하의 생명까지 희생시킬 각오를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민교장은 「무겁고 긴」훈시를 대통령의 치사보다 두배 가까이 길게(나중에 확인) 하더니 그냥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순간 단상엔 침묵과 긴장이 흘렀고 노대통령이 엄격한 목소리로 『교장, 경례를 받아야지』라고 채근했다.
민교장이 황급히 연단에 나가 연대장생도의 「교장에게 경례」구령을 받는 순간 연단쪽을 보기 어렵던 사회자로부터 『다음은 대통령의 치사가 있겠습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노대통령은 연단에 서면서 오른쪽에 앉아있는 민교장에게 뭔가 한마디를 했다. 대통령치사·분열식에 이어 식은 끝났다.
그러나 곧 민교장이 왜 대통령이 임석한 자리에서 그런 연설을 했는가, 연설내용은 그의 사견인가 군내분위기를 대변한 것인가, 대통령께 경례를 안한 것이 실수인가 아니면 변경된 의견절차에 따른 것인가 하는 얘기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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