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과 사법권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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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통적 의미에서의 대학이라는 사회는 세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학교 사회는 일반 사회로부터 격리·유리된 폐쇄체제성격을 갖는다. 시속·세속의 사회로부터 떨어진 이상과 진리를 좇는 학문의 수련장,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릴정도의 폐쇄적 고매함을 인정받고있고 그에 상응하는 기대를 사회인들은 부여하고 있다.
둘째, 대학이라는 학교사회는 가르침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라는 종속적 질서체계가 형성된다. 도덕과 인격을 포함한 지식의 전달자로서 교수와 그 가르침을 전수받는 학생이라는 독특한 관계는 중세의 강한 도제적 복종관계에서 비롯되어 오늘에는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권위로서의 복종관계로 형성된다.
세 번째, 대학사회가 갖는 특성은 앞의 폐쇄적·종속적 체제와는 별도로 형성되는 학생 스스로의 개성있고 독특한 자율적 문학속성·문화집단을 형성하는데 있다.
이 세가지 특징 중에서도 종속적 위계질서라는 권위주의적 체계는 대학사회를 묶어주는 중요한 고려이면서 대학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질서체계다. 따라서 학교와 학생과의 관계는 행정법상 특별권력관계라는 법 해석이 나올 수 있고 대학내의 질서는 교육권을 행사하는 교수, 이들 교수의 대표인 총장이 대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대학이라는 폐쇄적이면서 종속적이고 자율성을 갖는 독특한 성격의 커뮤니티 질서를 주도하고 결정하는 학사문제와 상벌책임은 1차적으로 교수와 교수단체, 그리고 총·학장이 행사해온 것이 대학사회의 질서체계이며 그 기준이 학칙이다. 이 질서가 무너질 때 교권이 침해되었다고 하고 외부로부터의 이러한 침해행위를 막기 위해 교육의 중립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난날 독재적 권위주의시대 속에서 교권은 정치권력에 의해 침해당하고 제한 당했으며, 특히 6·29선언 이후 대학이 민주화·자율화 바람을 타면서 교권은 이제 학생들에 의해 제한되고 밀려나는 형편에 이르렀다. 교권의 대표인 총장선출에 학생의 참여를 요구하고 등록금 동결이라는 대학운영 문제에까지 적극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학생이 교수의 머리를 삭발하고 총장실이 농성장으로 점거되며 총장후보를 뽑는 교수협의회 모임에 학생들이 난입해서 교수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최악의 상태에까지 와있다.
대학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이 판국에 교권의 권위를 다시금 뒤흔들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해 있었던 서울대 총장실 난입사건과 관련되어 제명된 총학생회소속 2명의 학생에게 제명처분을 취소하라는 고법의 판결이 그것이다.
총장선출문제와 등록금 동결투쟁으로 교권과 학생들이 극한적 대립양상에 처해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 판결은 자칫 확대 해석되어 대학사회의 자율성과 교권의 침해가 혼동될 우려가 있고, 총장실 난입·기물파괴가 정당화될 위험이 있다.
법원의 판결은 2명의 학생에 대한 징계가 형평을 잃었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흔들리는 교권을 바로 잡아준다는 의미에서 사법부의 의견을 대학측에 전달하고 대학은 그 의견을 받아들여 대학스스로 재심과정을 거치게 할 수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학사회 또한 옛날과 달리 학생수나 규모면에서 엄청난 팽창을 했다. 교권이 엄정한 판단을 내렸다하지만 그중엔 오판의 사례가 없으란 범이 없다.
이번 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대학은 학칙개정을 통해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소명기회를 부여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대학 내부의 징계사항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기에 앞서 대학스스로 징계의 절차와 방법을 새롭게 검토하는 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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