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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묵’에 응원의 ‘함성’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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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조선인은 까불지 마라. 헛소리 하지 말고 당장 꺼져버려!!”

지난달 28일 재일교포 영화인 박마의(50)씨 앞으로 이런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박씨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투쟁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 일어서는 위안부’ 제작자로, 어머니 박수남(83) 감독을 대신해 상영회의 진행, 홍보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메시지가 온 건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横浜)시에서 열린 영화 상영회 당일 아침이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상영회를 앞두고 우익들의 ‘헤이트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이날 상영회를 앞두고서도 수일 전부터 가두선전차가 상영회장 주변을 맴돌았다. 차에선 “일본 정부의 견해와 다른, 정치적으로 편향된 반일 영화, 영령을 모독하는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 위안부 강제연행은 거짓, 날조다”라는 메시지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사흘 전에는 특공대 복장을 한 남성 7~8명이 상영회장으로 쳐들어와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며 난동을 부리고 떠났다고 한다.

급기야 상영 당일에는 우익단체 회원 3명이 상영회장 앞까지 쳐들어왔다. 건물 주변에 경찰이 배치되고 바리케이드가 쳐졌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들은 “영화를 보여달라”고 난동을 부리며 주최 측 관계자들과 2시간 가까이 몸싸움을 벌였다. 박씨는 “야쿠자처럼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려 정말 무서운 분위기였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우익들의 활동은 갈수록 대범해지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위안부 재단 해체 등의 뉴스에 편승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NHK의 아침드라마에선 헌병이 시민을 괴롭히는 장면이 나왔다고 우익들이 난리를 피웠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나쁘게 묘사하지 말라”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일본의 역사는 아름답게 묘사되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논리다.

영화 ‘침묵’은 그래도 꿋꿋하다. 1년 넘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상영회를 계속해 오고 있다. 그는 “절대 상영회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상영을 포기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오는 8일 상영회에서도 대대적인 방해가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영화 ‘침묵’을 지지하는 시민 30여 명이 ‘인간 바리케이드’로 상영회를 지켜낼 계획이다. 다행히 상영회를 거듭할수록 영화를 지지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고 한다. 거듭되는 위협 속에서도 진실을 지켜내려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