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쇼크의 교훈 … 밀실서 폐쇄적 경제 운용 땐 위기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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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호 16면

우석훈의 경제 레이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됐다.위기를 막으려는 사람,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됐다.위기를 막으려는 사람,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여러분은 1997년 11월에 뭐 하고 계셨나요?’ 김혜수·유아인 주연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많은 관객을 그 날, 그 순간의 기억으로 호출한다. 시간이 흘렀다. 많이 흘렀다. 많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강렬한 기억이겠지만, 그 때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스무 살이 넘었다. 경험의 공유라는 눈으로 보면 이미 한국 사회는 97년도 외환위기를 경험한 기성세대와 그걸 책이나 영화로만 알게 되는 청년 세대로 나뉘게 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한국 경제 #실업률 7%로 늘고 실질임금 감소 #국민경제의 충격은 아직도 지속 #국민소득 3만달러로 3배 됐지만 #일상생활 체감 고통은 되레 커져 #경제위기, 무관심 속에서 다가와 #과거의 아픔 직시해야 재발 막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으로 이어진 경제위기로 삶이 위기에 처한 많은 사람들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한국은행 실무팀장 김혜수의 눈으로 영화로 보게 될 것이다. 아마 드물겠지만 IMF 경제위기로 엄청난 기회를 맞았거나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일부 고위 공무원은 재정국 차관 조우진의 눈으로 영화를 보기도 할 것 같다.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은 중남미나 아시아의 경제 위기 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어떻게 집권층이 자신의 숙원 사업들을 추진하는지 잘 보여준다. 대중이 IMF라는 쇼크에 빠져 있을 때,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된 것은 우리의 경우도 사실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되짚어봐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10대와 20대가 경제위기를 단 한 번 오는 인생의 기회로 생각한 유아인의 눈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중 하나가 건물주라는 사실은 이제 충격적이지도 않다. 전세 끼고 집 사기, ‘갭투자’에 청년들이 몰려들어 충격을 주었다. 대안 화폐로서의 실체가 구체화되지 않은 암호화폐에 대학생들이 달려들어 사회 현상이 된 것이 1년도 되지 않는다. 국가의 위기를 개인적 삶의 기회로 삼겠다는 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유아인은 가느다란 기회와 이성적 냉철함 그리고 흔들리는 양심 사이에서 질퍽질퍽한 20대를 보내는 지금의 청년 모습과 같다. 어쩌면 영화 내에서 가장 21세기적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다. 누가 그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하고, 민족주의를 요구할 것인가? 합계출산율이 1 이하로 내려가는 시대다.

IMF 직전, 현대에서 내부 자료를 가지고 수익률 계산을 해봤다. 아반떼 한 대 팔면 2000원 정도 남았는데, 차 팔고 나서 짜장면 한 그릇 먹으면 손해다. 이래서 사업이 되나, 놀라웠다. 대우차를 가지고 비슷한 계산을 해봤다. 차 한 대 팔면 20만 원 정도가 손해였다. 그나마 흑자라도 내던 현대차는 버텼지만 팔면 팔수록 적자나던 대우차는 외환위기를 못 버텼다. 97년, 우리는 내실 없는 호황에 취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IMF는 우리 모두, 아니 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에게는 비극적 사건이다. 정신적 충격도 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때의 충격에서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국민경제의 충격은 아직도 지속된다. 제일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 경제에서 완전고용의 신화가 깨진 것이다. 자연실업률이라고 할 수 있는 2% 내외의 실업률이 7%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로는 한국은 체감적 완전고용 근처에도 못 가봤다. 노동자 부족이 문제였던 사회에서 일자리가 문제인 사회로 바뀌었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보이는 것은 임금 감소다. 80년대 이후로 한국은 노동생산성 증가보다 실질임금의 증가가 더 높은 경제였다. 군사정권 시절, 국민들이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때 중산층이 형성됐다. IMF 이후로 실질임금의 감소가 커지면서 2004년 이후로 우리는 노동생산성 증가보다 임금을 덜 주는 사회가 됐다. 중산층이 해체되는 과정이다. 그 충격이 97년에 시작되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격차’가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벌어졌고,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이 벌어졌다. 격차 현상은 때로는 ‘똘똘한 한 채’로 나타나고, 때로는 ‘인 서울 대학’으로 나타나고, 어떨 때에는 ‘공시족 열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97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근처의 국가가 이제 국민소득 3만 달러로 3배 가량 커졌다. 그러나 경제적 일상 생활로 느껴지는 고통은 3분의 1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중의 많은 문제는 IMF 경제위기로부터 기원을 두고 있거나 더 격화되었을 것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자신의 신념이나 생존을 향해 달려가는 4개의 축이 만들어내는 외형적 다이나믹스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김혜수와 조우진의 노선이 충돌하고, 권력과 욕망이 충돌한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의 얘기다. 외국 사람은 모르겠지만, 한국인 특히 30대 이상의 한국인에게는 훨씬 자기 내면 안의 다이나믹스를 만들 얘기다. 아픔일 것이고, 고통일 것이고, 뒤틀림의 기억일 것이다. 앞의 세대들이 한국전쟁을 고통의 공유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면, 우리 세대는 외환위기가 고통의 공유 기억일 것이다. 아픔의 기억은 치유되지 않는다. 다만 시간과 함께 무뎌질 뿐이다. 영화는 20년 전 그 순간을 환기시키고, 관객은 그 후로 지나온 20년을 1시간 50분 동안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경제 위기의 아픔은 첫 사랑의 아픔이나 실연의 아픔과는 다르다. 헤어짐의 아픔이 시간이 지나면 아련해지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잘 못 끼운 경제적 구조의 아픔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강화되고, 우리는 점점 더 경제적 수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중산층 해체되고 소득 격차 심화

1997년 11월, 잔고나 자산이 피폐해지고, 결국 식구를 비롯한 인간관계 자체가 황폐해진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들이 과연 이 영화 앞에 서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을까? 그래도 그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아픔 속에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고통은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커져갈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그 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위기로 갈 확률이 줄어든다. 경제 위기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를 먹고 자란다. 97년에 그랬던 것처럼, 2008년에도 역시 그렇다. 20년 전처럼 또 멍하게 있다가 당할 수는 없다. 밀실에서 폐쇄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면 위기가 온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가 분명 있다. 나는 남은 인생에 보고 싶지 않은 것 두 가지가 있다. 전쟁과 IMF 경제 위기….

우석훈 박사·경제학자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파리 제10대학교에서 생태경제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현대 그룹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다. 『88만 원 세대』가 대표작이며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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