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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행방불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는 지난 며칠동안 좀 의아한 광경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별안간 총무처장관이 행방불명되었다. 사표를 던지고 어디로 잠적한 것이다. 그 사표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느냐는 나중 문제다.
미관말직도 아니고 한 나라의 국무위원이 자취를 감추었는데 누구도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 비록 사표를 냈다고는 하지만 그의 직책은 사표 한 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수리될 때까지는 공인으로서의 모든 책임이 그에게 귀속된다. 사표를 던졌다는 것으로 행방불명의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작은 회사 총무과의 말단직윈도 그만 둘 때는 자신이 하던 일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후임자에게 업무 인수 인계를 깔끔히 하는 것이 도리다. 사표를 냈다고 덜렁 나 몰라라 하고 그 자리를 떠나 버리는 것은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
총무처장관은 정부 조직법에 보면 국무회의의 의안을 정리하고 공무원의 인사관리, 행정기관의 조직관리 등의 책임을 지고 있다. 그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국무위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공무원의 관기를 확립해야 하는 최고부서의 장이다.
더 웃지 못할 일은 사표 뒤의 상황이다. 청와대의「고위당국」자도 그의 행방을 알기 위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끝내 알지 못했다. 『갈 만 한데를 다 찾아보았다』는 얘기는 웃어넘길 일이 못된다. 정부의 정보 확보가 그 정도인가.
총무처를 직속으로 거느리고 있는 총리까지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 감독하는』책임을 가진 총리가 바로 그 밑의 장관이 사표를 내도 사연도 모르고 행방도 몰랐다는 것은 난센스다.
우리는 소신도, 확고한 철학과 사명의식도 없이 자리에 연연해 눈치나 보고 앉아 있는 공직자를 경멸한다. 때로는 소신에 따라 사표를 내던지는 장관도 있어야 한다. 미국의 「와인버거」국방장관은 부인의 중병을 위해 사표를 내고 그 좋다는 자리를 떠났던 로맨틱한 사표를 본 일도 있었다. 그러나「와인버거」는 행방불명되는 일은 없었다. 사표가 수리되는 마지막 순간을 보고 자리를 떠났다. 공인이 어렵다는 것은 공인으로서의 도리를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의무의 부담 때문이다. 장관의 행방불명은 어디로 보나 잘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1천5백년전 도연명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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