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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이중대표소송제 등 상법 개정안 주요 쟁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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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토론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이번 상법 개정 시안이 기업 경영권 방어에는 충분치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방어 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왼쪽부터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 남상구 고려대 교수 겸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원장, 송종준 충북대 교수. 안성식 기자


▶김영욱(사회)=먼저 경영권 방어 문제부터 토론하자. 재계는 이번 상법 개정안에 경영권 방어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아 섭섭하다는 반응이다.

▶송종준=차등 의결권이나 '포이즌 필'(독약 조항.적대적 인수합병) 세력이 지분을 늘릴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저가로 신주를 발행해 공격 측 지분을 낮추는 방법) 같은 노골적 방어 수단은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환 주식, 의결권 제한 주식 등 다양한 종류의 주식 발행은 가능해졌기 때문에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적절한 방어수단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대주주에게 너무 유리한 쪽으로 차별하는 방어수단은 위험하다.

▶이승철=이중대표소송제와 집행임원제는 주주 이익 보호라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이와 균형을 맞추려면 경영권 보호 장치도 같이 도입돼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없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측면에만 입법 의도가 맞춰져 있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주식 발행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제약 조건을 많이 달아 경영권 방어에는 소용이 없는 형편이다. 가령 일부 주식의 경우 주주 100% 찬성을 받아야 발행할 수 있게 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상구=개정안은 상당히 균형을 맞춘 안이라고 생각한다. 경영권 방어와 관련, 개정안을 평가하려면 경영권 방어장치를 더 많이 마련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지금까지 인수합병(M&A) 위협론이 많이 나왔지만 실제로 주요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M&A가 성공한 적은 없었다. 외국 자본의 적극적 공격 때문에 경영권 위협이 상당히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방어장치 마련에 소극적인 상법 개정안은 잘됐다고 생각한다.

▶사회=결국 쟁점은 경영권 방어 장치다. 과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한지부터 따져보자.

▶남상구=대기업들은 경영권 위협을 우려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기업집단의 경우 순환출자 등으로 내부지분이 40%에 가깝다. 소유권과 의결권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지표인 의결권 승수는 8에 이른다. 대기업 총수들이 자기지분의 8배에 이르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모자라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수단을 더 많이 도입하면 M&A의 가능성이 봉쇄된다. 오히려 건전한 시장경제 체제에 부담이 된다.

▶이승철=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와 관련해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제도는 엄청나게 많이 도입됐지만 방어 장치는 거의 마련되지 않았다. 적대적 M&A와 관련해서도 공격은 아주 쉬워졌지만 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 자본의 손을 묶는 바람에 외국자본과도 불균형이 생겼다. 공격을 쉽게 했다면 방어도 쉽게 하고, 방어를 어렵게 했다면 공격도 어렵게 해야 한다. 재계가 과도한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남상구=기업의 투명성과 관련해 이사회 같은 기업 내부 메커니즘이 만족할 만한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M&A 같은 외부 메커니즘이 필요한 것이다. 적대적 M&A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라 효과도 크지만 비용도 많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봉쇄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 결국 공격과 방어의 공평한 대우가 필요하다. 재계는 공격이 세고 방어가 약하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방어가 오히려 강하다는 시각도 많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이렇다할 M&A 사례가 없는 것이 그 방증 아니겠는가.

▶이승철=재계의 요구를 정확히 말하자면 경영권 방어수단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방어수단을 억제하는 규제를 없애라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법에 규정된 방어수단은 따로 없다. 기업이 알아서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방어수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송종준=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은 존중한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공공적인 성격을 갖는 법인이나 방위산업 등은 국가가 확실하게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 이런 부문에서 황금주 제도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사회=개정안에서 도입하기로 한 이중대표소송제도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보는가.

▶이승철=외국기업이나 합작기업을 설립할 때 크게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외국기업과의 합작회사가 주주의 동의와 이사회 결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했는데,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걸어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해보라. 외국 파트너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또 이사의 책임 부담이 늘어나 경영도 위험 회피에만 몰두하는 소극적인 행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사외이사들이 조금만 위험한 사안이면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심지어 안건으로 올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중대표소송제는 세계적으로 경쟁력 강화와 규제 완화를 위해 이사의 책임을 줄여주는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모회사는 자회사의 경영활동에 일일이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독립경영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과도 어긋난다. 지주회사 전환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주회사가 되려면 비상장회사의 지분 50%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중대표소송제 적용 대상이 된다. 제도가 도입돼도 주주는 별 이득을 못 보고 변호사 등 제3자만 이득을 볼 것이다.

▶남상구=다른 나라에 없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도입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주는 이득이 없고 변호사만 환영할 제도라고 하지만, 자회사를 통한 불법 행위가 없어지면 주주에게 이득이 된다. 게다가 최근 자회사를 이용해 대주주가 편법.불법으로 이득을 취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됐다. 그러나 자회사가 비상장사인 경우 이를 현실적으로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다. 물론 소송 남발을 막을 장치는 있어야 한다.

▶송종준=이중대표소송에는 사실상 혁명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우리 법 체계상으로는 허용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일부 주를 제외하고는 도입되지 않았다. 성급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에 대해 소송을 걸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 채권자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이보다 지금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인 대표소송제부터 정착시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회=집행임원제를 놓고 일부에서는 '경제판 사학법'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승철=이 제도가 도입되면 이사회는 집행임원을 선임.감독하고, 집행임원들은 의사결정하고 실행을 책임지는 이중구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이사회가 업무 파악을 못해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현행 제도로도 실질적인 업무 지시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법원에서도 등기임원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고 사실상 누가 행위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무엇보다 사주의 경영권이 상실될 우려가 있다. 사주가 이사회 의장이 되면 그는 업무 집행권을 못 갖게 된다. 집행임원의 임면권만 가질 뿐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것이란 얘기다. 도입 여부를 기업 자율에 맡겼다지만, 사회적으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증권거래법이나 특별법 등을 통해 강제될 가능성이 크다.

▶남상구=독일의 이원적 이사회제도로 가자는 얘기인데 이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사회가 집행임원의 기능을 많이 갖고 있다. 영미 식 이사회의 약점을 보완하자는 취지인데, 혼란만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보다는 이사회의 책임을 강화하는 보완책이 더 중요하다. 지금 같은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제로는 곤란하다. 책임이 강화된다면 집행임원제는 필요할 것 같지 않다.

▶송종준=이 제도를 기업이 얼마나 많이 선택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집행임원제를 도입하는 회사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 제도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지향하기 때문에 '경영자가 지배하는 기업'에 적합한 제도다. 경영자 지배형 회사일수록 경영 퍼포먼스가 떨어진다는 결과도 있는 만큼 이 제도로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상징성은 있지만.

▶사회=개정안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해 달라.

▶이승철=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몇몇 기업들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중 삼중으로 규제 장치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선량한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 개정안이 발효되면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리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힘들어질 것이다. 최종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점들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남상구=기업들도 상법 개정으로 지금 당장 어려워지느냐, 혜택을 보느냐만 따지지 말았으면 한다.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 기업도 이젠 그만한 역량이 생겼다고 본다.

▶송종준=당장 적용받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불만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균형은 맞췄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중대표소송제 같이 너무 앞서나가는 제도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리=이현상 기자 <leehs@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