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2. 내 인생의 로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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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첫 데이트때 입었던 원피스 차림으로 센트럴 파크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면 "혼자 살고 있으니 궁금한 게 많은가"라며 웃어넘기곤 한다. 이번 기회에 '내 한 번의 로맨스'를 꺼내보려고 한다.

서울대 의대 졸업 후 환자 속에 파묻혀 있던 와중에 여기저기서 맞선 제의가 들어왔다. 그때 내 나이 20대 후반으로 혼인 적령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맞선 자리에 나갈 수는 없었다. 중매 결혼이 활달한 내 성격에 맞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짧은 시간조차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나에게 미국 유학은 인생의 다른 면을 경험하게 한 사건이었다. 퀸즈 종합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칠 때쯤인 1968년 봄의 일이다. 기숙사 뒤편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큰 식료품점이 있었는데, 나는 가끔 일본 과자며, 양갱.굴 등을 사러 이곳에 들렀다.

어느 날인가 병원에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한국인 남자가 꽃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식료품점에서 나를 보고 점원에게 근무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 서울에서 중학생 때 혼자 미국에 건너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사업을 한다고 했다.

첫 데이트 날, 나는 예쁜 원피스에 브로치를 달아 한껏 멋을 내고, 기숙사 창문으로 도로를 내려다보며 그 사람을 기다렸다. 검은색 링컨콘티넨탈 승용차에서 내린 말쑥한 정장 차림의 그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나를 위해 차 문을 열고, 닫아주는 그의 매너에 난 공주가 된 듯 즐거웠고, 그런 그가 참으로 멋져 보였다.

뉴욕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인 베어 마운틴으로 피크닉을 갔다. 그는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비빔밥과 한국 음식을 펼쳐놓았다. 당시 맨하탄에는 '삼복'과 '아리랑'이라는 한국음식점이 두 곳 있었는데 거기서 주문했단다. 수련기간에 단 한 번도 한국음식을 접하지 못한 나에게 그의 이런 준비는 감동 그 자체였다. 언젠가 나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면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 스트립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때를 회상하며 감회에 젖은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주말이면 뉴욕 빌딩 숲을 돌아다니고, 센트럴 파크나 뉴욕 외곽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나란히 누워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새벽이슬을 맞을 때까지 춤을 추기도 했다. 때론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애틋한 로맨스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 나에게 청혼을 해왔다.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리곤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얘기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울었다.

2주 정도 지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 제의를 거절하고 난 또 울어야 했다. 난 이미 마음을 추스르고, 귀국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시절 이미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 '나의 일', 그리고 '환자'와 결혼한 몸이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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