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비 지원 중산층까지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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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놓은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불임 시술 지원, 보육비 지원, 노인 일자리 확대 등 무려 230개 세부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투입 예산 규모가 가장 큰 부문은 영유아에 대한 보육비 지원이다. 모두 10조5719억원이 들어간다. 규모도 크지만 저소득층에만 집중했던 보육비 지원을 중산층까지 확대했다는 의미가 있다.

◆ 보육료 지원 확대=현재 만 4세 이하 영유아에 대한 차등 보육료 지원 대상은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의 70% 이하인 가구로 제한돼 있다. 2009년부터는 소득이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의 130% 이하인 가구도 지원받게 된다. 이들은 소득 계층에 따라 보육비 정부 지원 단가(연령에 따라 35만~15만8000원)의 30%~전액을 지원받는다. 이렇게 되면 정부 지원을 받는 아동은 전체 아동의 80%(현재 50%)로 늘어난다.

종일제 유치원은 지난해 전체 유치원의 62.5%였다. 2010년까지 모든 유치원이 종일제 유치원이 된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논란이 있었던 아동수당제 도입은 이번 대책에서 빠졌다. 기획예산처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해 무산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둘째 아이부터 매달 10만원씩 지원하는 아동수당제를 추진했었다. 김용현 저출산고령사회정책본부장은 "찬성과 반대가 맞선 데다 재정 여건을 고려해 이번 대책에서 빠졌다"며 "앞으로 국민 여론이 커지면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인 일자리 확충 위한 정년 연장=고령화 대책 중 눈에 띄는 것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60세)에 맞춰 2010년까지 정년 연장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장 여건이 성숙됐을 때'라는 단서를 붙여 정년 연장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임금체계가 연공서열제에서 직무급제로 바뀌어야 하고, 노동시장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무조건 도입하자는 게 아니라 기업들이 정년 연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채용.해고 등에서 나이를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한 연령차별금지법 제정도 추진한다. 법은 단순한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연령 차별을 하면 불이익을 주는 처벌 조항이 포함된다.

◆ 기존 정책 '재탕' 많아=이번 대책에는 이미 발표됐거나 실행 중인 대책이 여럿 포함됐다. 3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는 근로자 평생학습 지원 및 실업자 직업훈련 개선 사업은 노동부가 지난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고용 인프라 선진화 계획'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노인 일자리를 올해 18만 명에서 2010년 38만 명으로 늘린다는 사업(1조6357억원)은 올해 복지부 업무계획에 포함돼 있다. 노인수발보험제도 운영(1조1431억원)과 이를 위한 노인 요양시설 확충(1조5024억원)은 법안이 제출돼 2008년 도입할 예정이다. 또 방문 구강 보건 서비스 사업(312억원), 학교 체육활동 활성화(149억원), 직장인 건강증진 사업(578억원) 등 대책 중에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포함돼야 하는지 성격이 모호한 것도 많다.

이런 이유로 이번 대책에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산발적으로 나온 정책들을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개선해 나간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실행까지는 넘어야 할 산 많아=정부의 이번 대책에 대해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8일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공동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재계는 노사정 연석회의에서 정년 연장, 남성 육아휴가제 도입 등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으나 이번 시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 기업의 부담 증가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며 "특히 정년 연장 의무화는 기업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역시 정년 연장엔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이의 전제조건인 연공서열제 임금구조 폐지 등에는 반대하고 있어 정년 연장 의무화는 앞으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향후 5년6개월에 걸쳐 32조원이 필요한데 재원 마련도 과제다. 또 출산 크레디트와 같은 제도는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민연금법은 각 당의 견해차가 워낙 커 합의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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