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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장 자리없앤 韓과학원…코넬대 내게 초빙교수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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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 

1972년 3월 과학기술처는 한국과학원(KAIS) 원장 교체에 이어 내가 혼자 맡던 부원장을 각각 교무와 행정 담당의 두 자리로 나누고 행정부원장을 문영철 과기처 기획관리실장에게 맡겼다.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막 취임한 박달조 2대 원장이 나를 불러 현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였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94) #<46> 부원장 자리 없앤 한국과학원 #과기처, 부원장 교체 계속 요구 #박달조 2대 원장 나를 신임하자 #1년 반 뒤 부원장직 아예 없애 #평교수로 연구·교육 몰입하려는데 #터만 조사단 인연 코넬대 롱 교수 #과학기술사회 초빙교수로 초청해 #과학기술 산업·경제 발전에 활용 #‘원자력 평화적 이용’ 두 눈 번쩍

1971년 4월 14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홍릉에서 열린 한국과학원, 한국개발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공동 기공식. 국가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과 경제, 국방을 나란히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사다. [사진 카이스트]

1971년 4월 14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홍릉에서 열린 한국과학원, 한국개발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공동 기공식. 국가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과 경제, 국방을 나란히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사다. [사진 카이스트]

나는 박 원장에게 과학원 설립 경과와 교수 임용, 교과 과정 편성, 학생 선발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보고가 끝나자 박 원장은 “이렇게 잘 된 설립 계획과 실행 상황은 본 적이 없다”고 칭찬하고 “그런데 왜 (과기처에서) 당신을 부원장직에서 해임하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박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부원장 직제 개편의 의도를 짐작하게 됐다. 과기처가 과학원 운영에서 나를 가급적 배제하고 부처 공무원을 보내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박 원장은 오히려 “정 박사, 교무 부원장을 맡아 과학원을 위해 계속 헌신해 주시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 원장은 과기처의 해임 압력을 거부하고 오히려 나를 전적으로 신임하면서 애초 계획대로 과학원 설립 업무를 추진하라고 했다. 과기처는 박 원장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73년 가을에 과기처는 다시 과학원 조직을 개편해 이번에는 부원장 직제를 아예 폐지했다. 문 부원장은 과학원을 떠나고 나는 평교수로서 전자·전기공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만 맡게 됐다. 미국에서 하던 핵융합 연구를 과학원에서 계속하고 싶었지만, 연구비나 시설, 인력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당시 한국 과학계 상황으론 무리였기에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앞날을 고민하던 중 빛이 보였다. 터만 조사단과의 인연이 나를 도왔다. 터만 조사단 참가 교수들과는 그 뒤에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던 터였다. 특히 뉴욕 공대에서 운영하던 임시 주미 연락 조정실을 스탠퍼드대로 옮기자 이 대학 부총장인 프레데릭 터만 단장이 고문을 맡아 한국을 계속 돕고 나의 멘토 역할을 했다. 조정실장 역할은 스탠퍼드대 그랜트 아이어슨 산업공학과 주임교수에게 부탁했다. 아이어슨 교수는 과학원 초기 교수진 구성에서 가장 취약했던 산업공학 분야를 보완하는 데 도움을 줬다.

1982년 6월 12일 유뇽시에서 열린 반핵 시위.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 자제를 촉구했다. 반핵 시위 조직에 코넬대 평화학과도 참여했다. 과학기술사회 연구소에서 비롯된 학과다. [사진 코넬대]

1982년 6월 12일 유뇽시에서 열린 반핵 시위.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 자제를 촉구했다. 반핵 시위 조직에 코넬대 평화학과도 참여했다. 과학기술사회 연구소에서 비롯된 학과다. [사진 코넬대]

터만 조사단 일원인 코넬대의 프랭클린 롱 교수와는 독특한 인연 때문에 더욱 가까웠다. 애초 터만 보고서 초안 작성자로 지명됐던 그가 뉴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초안 작성을 결국 내가 맡게 된 것이다. 그런 롱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부원장을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코넬대 과학기술사회(STS) 연구실의 초빙교수로 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의 초청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과학기술사회 연구는 과학기술을 산업과 경제로 연결해 인류와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할 방법을 궁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자력을 전력 공급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활용하는 방안을 중점 연구하면서 핵무기 개발과 확산에는 반대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새롭게 도전할 대상이 생겼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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