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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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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인생에 대한 질문 중 어떤 것들은 실상 큰 의미가 없거나 더 나아가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겉보기에는 꽤나 깊이가 있어 보여도 그렇다. 대표적으로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그에 해당한다고 믿고 있다.

‘삶의 목적’을 묻는 질문 옆에 놓인 덫 #옛 성현과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넘어

이 질문은 마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처럼 다가온다. 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자신이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잠기게 된다. 질문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그 무게에 걸맞은 무거운 답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러면 질문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삶에 대한 질문이 그렇게 삶을 침식한다.

어떤 사람들은 신이 마련한 낙원에서의 진짜 삶이 있고, 현생은 그것을 위한 예비과정 또는 시험이라는 식으로 답한다. 만약 그 말이 옳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당장 순교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순교 기회를 찾기 어렵다면,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등의 말씀을 따른 뒤 이른 죽음을 기다리면 된다. 지상에서 가족과 누리는 수십 년 정도의 불완전한 안락이 낙원에서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기쁨에 비할 수 있겠는가.

‘왜 사는가’에 대한 솔직한 나의 답은 이렇다. 이미 태어났고, 죽는 것이 무섭고 싫다. 2분 전에 죽는 것이 싫어서 자살하지 않았고, 1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 1분, 1분이 쌓여 내 삶이 됐다.

‘이미 태어났고, 죽는 것이 무섭다’는 문장에서 뒷부분에 신경을 쓰면 자기 삶이 시시하게 보인다. 앞부분에 집중해야 인생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겨우 깨닫게 된다. 곰이며 호랑이며 구미호가 이상한 음식들을 참고 먹으며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인간의 삶. 난 그걸 공짜로 받았다. 이리저리 투덜대기도 하지만 1분 전에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편을 선택했고, 지금도 그렇다. 삶의 목적은 모른다. 그러나 수억 번, 수조 번 삶을 결단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왜 사는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도 역시 썩 좋지 않은 형식이 있는 것 같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당장 할 일은?’이라든가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수세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삶의 의미나 추구해야 할 가치에 명확하고 일관된 우선순위가 있다는 가정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채. 그 상태에서 어떤 답을 내놓고 나면 그 답에 맞춰 자기 인생을 재구성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남는다.

그러나 이는 무인도에 가져갈 물건이나 책을 묻는 난센스 퀴즈와 비슷하다. 무인도에 세 가지 물건이나 책 세 권을 원하는 대로 골라서 가져갈 수 있는데, 부피나 중량은 따지지 않고 개수로만 세 개를 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터무니없다. 관광을 간다 해도 그렇고 조난을 당한다면 더 그렇다. 그런 사고실험이 우리 자신에 대해 알려주는 바도 별로 없다. 가치관이 아니라 재치, 기껏해야 취향 정도를 알려준다.

삶이라는 축복과 거기서 누릴 수 있는 의미는, 차라리 밥상과 그 위에 가득 차려진 반찬 같은 관계 아닐까? 몇 가지 반찬만 골라 먹어야 한다는 법 따위는 당연히 없다. 젓가락을 가져가는 순서가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어떤 반찬은 서로 어우러질 때 더 맛있고 영양도 높다. 인생 최우선 가치에 대한 질문도 기실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뭔지 묻는 정도에 불과한 것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삶의 목적이 어떤 하나의 가치이고, 우리는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모두 원푸드 다이어트 홍보처럼 보인다. 내용이 명쾌하면 명쾌할수록 더 그렇다. 무엄하지만 옛 성현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솔직히 그렇게 느낀다.

오직 꿈을 위해서, 혹은 오직 가족이나 공동체나 깨달음을 위해서, 다른 모든 걸 희생하고 가진 걸 전부 바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히 그 치열함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부나 포도만 먹고 독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의 후기를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일단 나로서는 따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은 자칫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관한 한 학자들의 이야기도 그다지 믿음이 안 간다. 아직은 연구가 초보적인 수준인 것 같고 조언도 혼란스럽다. 콜레스테롤이나 비타민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건강 관련 연구들처럼.

어떤 질문과 답으로도 인생이라는 수수께끼는 끝내 해명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좋은 삶과 좋은 식사의 비결은 다들 웬만큼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여러 반찬을 골고루, 음미하며 꼭꼭 씹어 먹는 것 아닌가. 한 입, 한 입. 1분, 1분.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