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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현대상선에 들어갈 6조원이 '헛돈' 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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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 산업부 기자

김도년 산업부 기자

도대체 현대상선을 정상화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얼마일까. 지난해 7월 실사 결과엔 10조원(AT커니)이 부족한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넉 달 뒤 부족자금 추정액은 2조8540억원(삼정회계법인)으로 줄었다가, 올 9월엔 다시 6조3723원(삼일회계법인)으로 늘었다. '고무줄' 실사 결과에 '혈세' 지원 예상액도 널뛰기를 반복했다. 분명한 건 현대상선의 취약한 영업력을 고려하면 정상화엔 정부가 밝힌 6조원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조원의 혈세 지원을 결정하는 일이지만 정부 주도 구조조정은 늘 깜깜이로 진행됐다. 한진해운은 청산하기보단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2조원 이상 가치 있다는 실사 결과가 나왔지만 정부는 파산을 결정했다. 정부는 "대주주의 자구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 이유로 국가 중대 자산이자 수많은 일자리가 걸린 세계 7대 해운사의 숨통을 막은 게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그 내막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박근혜 정부 때까지 운영된 '서별관 회의'의 불투명성을 문제 삼아 문재인 정부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산경장 회의)를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로 내세웠다. 하지만 산경장 회의 역시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몇 개월 만에 현대상선 혈세 지원액 예측 결과가 바뀌는 데도 그 근거를 납세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기업 구조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민은 내 세금이 제대로 쓰이길 원한다. 그때그때 자금 부족을 막기에 급급한 '땜질식' 처방을 원하는 게 아니다. 모든 변수를 치밀하게 검토한 정밀 실사 결과를 내놓고 가장 정확히 측정된 혈세 지원액이 얼마인지를 보고 싶어 한다. 정부는 실사 결과로 파악된 지원 금액이 예상보다 많을지라도 반드시 기업을 정상화해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이를 국민에게 성의있게 설명해야 한다. 회계법인이 '출제자의 의도'에 맞춘 실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 기업 생사를 결정하는 구조조정은 정면돌파밖에 도리가 없다.

현대상선은 왜 정상화해야 하는가. 왜 국적 해운사로 만들어야 하는가. 이것이 얼마나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내년부터 자본잠식이 예측될 만큼 자본금 부족에 시달리는 회사에다 국내 조선사에 초대형 선박 20척을 주문하라고 대출하는 방식으로 정말 현대상선을 살릴 수 있는가. 정부는 이런 국민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두푼 도 아니고 6조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김도년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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