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세계 미술시장에 뛰어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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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백여 년 유럽과 미국이 지배해온 세계 미술계를 갈아치울 힘이 지금 동북아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20일 오전 10시, 제1회 베이징 비엔날레(北京國際美術雙年展) 개막식이 열린 베이징 세기단(世紀壇) 들머리에서 미술평론가 왕중(王仲.'미술' 편집인)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한국 작가들을 맞았다.

새 천년을 기리는 12억 중국 인민의 힘이 거대한 조형물로 솟은 세기단 광장은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뻗어가려는 중국을 지켜보러 온 48개 나라 3백 여명 미술인들로 북적였다. 설치미술과 미디어 실험미술이 대세를 이룬 서양 화단에 맞서 '회화의 복권'을 내세운 베이징 비엔날레는 '창신(創新)-현대성과 지역성'이라는 주제 속에 그 뜻을 띄워보내며 10월 20일까지 한 달에 걸친 신생 비엔날레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중국을 빼고는 가장 많은 21명 작가가 초대받은 한국은 특히 아시아 미술을 부각시키려는 중국의 동반자로서 따듯한 환대를 받았다. 전시장도 여러 나라 작가들을 몰아놓은 중화세기단예술관이 아니라 중국 본전시와 3개의 특별전이 열리는 중국미술관으로 배정돼 각별한 대접을 받은 셈이 됐다. 주최측인 중국미술가협회 왕춘리(王春立) 부비서장은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민족의 기개를 꿋꿋하게 펼쳐온 한국 미술에 보내는 중국 미술인의 동지 의식"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이광군 중국 루쉰미술대학 교수가 작가 추천을 맡은 '한국미술 특별전'은 개막 첫날부터 몰려든 관람객들로 '전시장 중의 전시장'이 됐다.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상을 두루 살필 수 있도록 꾸려진 작품들은 공식 소개되는 한국 미술을 처음 접하는 중국인들에게 호기심과 공감을 불러왔다.

전시장을 찾은 창사나(常沙娜) 중국미술가협회 부주석은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을 새긴 정원철씨의 판화 앞에서 "중국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동감을 표시했고,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신학철씨의 유화 '한국현대사-초혼곡'을 유심히 살피는 등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세계 평화를 향하여 민족 나름의 표현기법을 일구어온 한국 미술이 낯설지 않다"고 했다.

베이징시 인민정부와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 중국미술가협회가 예산 20억 원을 들여 공동 주최한 제1회 베이징 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부산비엔날레.미디어시티서울 등 이미 3개의 비엔날레를 열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한국 쪽 초대작가로 참가한 조각가 정현씨는 "거대한 자본주의로 물량 공세를 펴며 세계 미술을 획일화시키는 미국 미술에 맞설 탈출구는 여기, 중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왕성한 기운과 저력을 보았다"고 말했다.

중국 내부에서 쏟아지는 비판의 시선도 우리에게는 교훈이 됐다. 조선족 미술평론가로 주목받고 있는 윤길남 중앙미술학원 교수는 "관이 주도하는 행사이다 보니 중국전에 나온 작가의 90%가 해외 기획전에는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못했던 미협 소속이라는 한계를 드러냈다"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문화적으로 북돋을 힘을 키우려면 중국 전역의 미술 흐름을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베이징=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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