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붕어빵 동네 놀이터 ? 여기는 환상의 예술동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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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나는 까치'놀이터 얘기다. 지난해 8월 시흥시의 놀이터 설계 공모에 당선돼 리모델링 사업을 맡은 임옥상미술연구소가 이곳을 예술문화공간으로 바꿔놨다. 놀이터의 변신을 진두지휘한 임옥상 대표는 "놀이터의 '조달청 문화'를 없애고 싶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규격화된 놀이기구를 깔아놓은 '붕어빵'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 신체발달을 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나는 까치'놀이터는 상식을 뒤집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채워졌고, 지난달 19일 개막행사를 치른 뒤 매일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몰려드는 지역 명물이 됐다.

아이들은 어른 계산대로만 놀지 않는다. 경기도 시흥 ‘나는 까치’놀이터의 ‘우리는 원숭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발을 헛디뎌 떨어질 때를 대비해 마련해둔 안전그물이 가장 인기있는 놀이기구가 됐다. 왼쪽 사진은 놀이터의 상징 조형물인 ‘까치집’이다. 김성룡 기자

#발상의 전환, 상상력을 자극하라

'나는 까치'놀이터의 전경은 모래밭 위에 미끄럼틀.정글짐.그네 등을 띄엄띄엄 배치한 기존 놀이터와는 사뭇 다르다. 여러 놀이기구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메인 건축물(사진(1))이 놀이터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이 층계를 오르내리면서, 좁아졌다 넓어지는 기둥 폭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공간지각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놀이공간이 자연스럽게 1층, 2층으로 구분되면서 1층은 비가 와도 놀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됐다.

놀이기구들도 독창적이다. 어린이 여러 명이 탈 수 있게 한 시소는 오르내릴 때마다 '뽕뽕'하고 방귀 소리가 난다. 미로찾기 공간은 바닥에 지압용 자갈을 설치한 웰빙 학습공간으로 꾸몄다. 막힌 길과 뚫린 길의 바닥에 다른 종류의 자갈을 깔아 아이들이 촉감만으로도 제 길을 구별할 수 있게 했다. 색깔과 공간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놀이기구 '나는 로빈후드''우리는 원숭이'도 설치됐으며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황토벽도 마련됐다. 집을 거꾸로 세운 '나는 허클베리핀'(사진(2))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놀이터를 찾은 이재진(12.시흥 도원초6)군은 "놀이터가 바뀌기 전에는 학원 가기 전에 시간이 나면 집에서 TV를 보거나 컴퓨터로 놀았는데 요즘엔 놀이터에 나온다"며 "'우리는 원숭이'그물에서 쿵쿵 뛰는 것과 '나는 허클베리핀''지압 미로'에서 술래잡기하는 것이 특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누가 버렸을까, 누가 빼갔을까.

너무 인기를 끌어서일까. 개장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나는 까치'놀이터는 벌써 몸살을 앓고 있다.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는 도리어 애교인 셈. 시소 가장자리에 박아놓은 전구는 군데군데 이가 빠졌고(사진(3)), '나는 허클베리핀'으로 올라가는 그물엔 예리한 칼로 끊으려 한 흔적이 보인다(사진(4)). 안전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4명이 함께 탈 수 있도록 설계된 '다 함께 그네'는 결국 철거됐다. 20명 이상이 한꺼번에 매달리는 바람에 아이들이 떨어져 다치는 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이런 색다른 놀이터가 동네마다 생기면 이용 에티켓도 자연스럽게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며 안타까움을 애써 감췄다.

#똑같은 놀이터가 없는 그날까지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대표 유인촌)에서도 추진 중이다. 서울문화재단은 '획일적인 놀이터를 문화적으로 개선해보자'는 취지로 '문화가 있는 놀이터'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신개념 놀이터 모델로 ▶시계탑.소화전.놀이집 등 놀이터 시설을 모두 뒤집어 놓은 '거꾸로 놀이터' ▶애벌레미끄럼.토끼가로등.숫자구름다리 등을 배치한 '앨리스 따라가기' ▶무대.전망대.미끄럼틀의 기능을 통합한 '천체놀이터' 등을 내놓았다. 재단 측은 이들 모델을 실제 놀이터에서 실현하기 위해 건설사 등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있으며, 올 가을엔 성북구 돈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 '거꾸로 놀이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임옥상미술연구소 역시 놀이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 놀이터와 서울숲 놀이터, 경기도 구리시 동네놀이터 등에서 또 다른 예술놀이터를 조성 중이다. 임 대표는 "우리나라에 똑같은 놀이터가 하나도 없는 것이 꿈"이라며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에 가면 놀이터만 둘러봐도 본전 뽑는다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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