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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거 무서워들 말아. 잘 사는 게 더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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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 '염쟁이 유씨'에서 1인 15역을 연기하는 임형택(왼쪽)ㆍ유순웅 배우. 22일 공연장인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무대에 올라 작품 소품을 이용해 포즈를 취했다. 각각 영정 속 노인과 유씨 아버지 역을 연기하는 장면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인극 '염쟁이 유씨'에서 1인 15역을 연기하는 임형택(왼쪽)ㆍ유순웅 배우. 22일 공연장인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무대에 올라 작품 소품을 이용해 포즈를 취했다. 각각 영정 속 노인과 유씨 아버지 역을 연기하는 장면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극  ‘염쟁이 유씨’가 다시 대학로 무대에 섰다. 서울 동숭동 예그린씨어터에서 지난 7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공연한다. ‘염쟁이 유씨’는 2004년 초연한 이래 전국 곳곳에서 65만여명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 스테디셀러다. 공연 횟수도 3000회를 훌쩍 넘겼다. 1인극인 ‘염쟁이 유씨’는 한 명의 배우가 염쟁이 유씨와 조직폭력배ㆍ장례업체대표 등 15개 배역을 소화하며 갖가지 죽음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초연 때부터 ‘염쟁이 유씨’를 지키고 있는 유순웅(54)과 2010년 합류한 임형택(49), 두 배우를 지난 22일 예그린씨어터로 찾아가 만났다.

65만명 울고웃게 한 연극 '염쟁이 유씨' #주인공 유순웅, 임형택 인터뷰 #죽음 통해 "잘 사는 삶"에 대한 성찰 이끌어

-15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어떤 매력이 ‘염쟁이 유씨’의 인기 비결일까.
“재미있다. 단순하게 재미만 있으면 허전할텐데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여운도 짙다.”(유)
“삶의 고비에서 힘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염쟁이 유씨’는 결국 ‘잘 살자’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 작품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찬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주변 상황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겠나.”(임)

‘염쟁이 유씨’는 평생 망자의 시신을 수습해온 염장이 유씨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염습 과정을 전통문화체험단에게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넉살 좋은 유씨는 시종일관 실없는 농담을 이어가며 관객들의 폭소를 유도한다. 작품의 주제는 우스갯 소리 사이사이에 숨어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에둘러 이야기하지 않고 유씨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전한다. “죽는 거 무서워들 말아.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산다는 건 누구에겐가 정성을 쏟는 게지” “죽는다는 건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이지 인연이 끊어지는 게 아니야” “좋은 삶은 좋은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거야” 등의 명대사가 예상치 못하는 순간 관객들의 가슴 속에 훅 꽂힌다. 재미와 감동 사이가 삶과 죽음 만큼이나 가깝게 이어져 있다.

 배우의 마음부터 움직인 대사도 여럿이다. 특히 유순웅은 “연극 마지막 부분 ‘삶이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처럼 모든 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서 이루어지는 법’이란 대사가 내 인생관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원래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라 무슨 일이 닥치면 걱정부터 했는데, 이 대사를 만난 뒤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한 걸음은 딛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신감이 서서히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1986년 마당극 ‘막걸리 총각’으로 데뷔한 유순웅은 줄곧 충북 청주에서 극단 생활을 했다. 그는 “‘염쟁이 유씨’로 인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연극을 통해 돈도 벌어봤고 영화 출연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염쟁이 유씨’는 김인경 작가가 극본을 쓸 때부터 ‘배우 유순웅’을 염두에 뒀던 작품이다. 직업적인 염장이는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초상을 치를 때마다 염을 도맡아 했던 유순웅의 아버지 이야기가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2004년 초연도 유순웅의 활동 무대였던 충북 청주였다. 청주 공연 성공 이후 지방 초청 공연이 이어졌고 입소문에 힘입어 2006년 드디어 서울에 입성했다. 그리고 임형택이 합류한 2010년까지 주인공 유씨는 늘 유순웅 혼자만의 몫이었다. 하지만 늦게 임형택에게도 ‘염쟁이 유씨’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존 배우의 이미지가 탄탄하게 자리잡은 상황이라 부담이 컸을 것 같다.
“‘독이 든 성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운 마음도 컸고, 끌리는 마음도 컸다. 내가 못하면 작품에 흠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내게 강한 채찍이 됐다. 사실 공연한 지 3∼4년이 지날 때까지도 굉장히 큰 눌림이 있었다. 공연이 잘 되는 날엔  ‘쟤가 저렇게 잘하는데 1대 염쟁이는 얼마나 잘할까’란 관객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잘 안되는 날엔 ‘1대 염쟁이 공연을 볼 걸 그랬다’란 관객의 마음이 느껴져서 힘들었다. 이제서야 그럴 필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형님의 유씨는 형님의 유씨이고, 내 유씨는 내 유씨였을테니 말이다.”(임)

‘염쟁이 유씨’는 형식도 독특하다. 관객들을 극 속으로 끌어들여 대화를 주고 받고 배역을 나눠주며 연기를 시킨다는 점에서 일종의 마당극 형태를 띤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 관객 체험형 공연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유순웅은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있었던 공연 양식”이라고 말했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돌발 상황이 생길 법도 하다. 잊지 못할 공연 에피소드가 있다면.
“관객들이 쭈뼛쭈뼛하고 어색해하는 걸 즐기는 작품이다. 유씨가 관객에게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선 관객이 극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한 번은 반함(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과 쌀을 물리는 일)을 하는 장면에서 어떤 할머니가 느닷없이 무대 위로 올라와 자기가 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임종을 못 본 게 한이 됐다’고 했다. 처음엔 관객들도 황당해 했지만 곧 공감하게 됐고 작품에 더 진지하게 빠져들었다.”(유)

“대렴(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고 베로 묶어 입관하는 절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객석에 있던 한 관객이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어떤 사연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삶이란 게 정해져 있지 않듯 공연에서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매너리즘에 빠질 겨를이 없다. ”(임)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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