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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붐@월드컵 <3> 힘들 땐 해보자는 의지만이 육체를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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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그런 내가 휘슬을 잠시 놓고 마이크를 잡고 해설을 하면서 또 이렇게 칼럼을 쓰겠다는 결심을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번 월드컵이 내가 누구보다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독일에서 열린다는 것. 그리고 2002년처럼 그간 너무 기울어져 있었던 해설문화에 균형을 잡아 주어서 축구에 관심이 있는 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2002년 내가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 MBC 중계팀에선 "좀 까라"고 제법 진지하게 요구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축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진심이었다. 그런 각오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여기까지 온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우리 대표팀을 팬들에게 어떻게 이해시켜야 가장 부끄럼 없이 양심적인 것인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 더구나 대표팀에 초대받지 못한 아들 두리 문제까지 있어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해야겠다는 조심스러움은 자꾸 할 말을 피하게 한다.

"예리함이 떨어졌다"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말처럼 4일 가나전에서 보여준 우리 선수들의 몸은 많이 무거웠다. 도무지 전술을 얘기할 팀 컨디션이 아니었다. 지금 같은 무력한 모습이 그간 쌓인 단순한 육체적 피로나 경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이라면 일주일의 시간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젊으니까.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월드컵 상업주의에 휩쓸려 샴페인을 이미 터뜨려 버린 후유증이라면 이건 정말 심각하다. 팬들의 질책을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나 역시 많이 놀랐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월드컵 마케팅은 대회가 끝난 후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시작하기 전에 다 해야만 하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무척 조급했다. 군 면제를 받고 싶어서 1승을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지난 대회 때와는 앞뒤가 완전히 뒤바뀐 모습이다.

매번 월드컵의 중심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건 차범근, 나 자신이다. 부인하고 싶지 않다. 이런 나를 비롯한 아들 두리와 몇몇 선수, 그리고 코칭스태프. 우리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월드컵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는지.

지금처럼 힘든 때에 육체를 뛰어넘는 건 하고자 하는 의지다. 그 의지가 몸으로 나타나려면 강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풍요를 위해 모든 걸 참을 수 있는 헝그리 정신. 그런데 일부 팬은 월드컵이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다 채워졌고, 그래서 월드컵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말한다. 행여라도 이런 마음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모두 자신을 되돌아 보자. 나도 여러분도.

진정 우리가 받은 만큼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지 겸허하게 생각해 보자. 그리고 최선을 다한 뒤 박수를 받자.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 본지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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