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 보도 청구권」에 문제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언론 보도에 대한 견제 장치로 「정기 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정정 보도 청구권」은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악용될 수 있어 그 개념 규정이나 적용이 엄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3일 중앙일보사가 위헌 심판 제청 신청을 낸 정기 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에는 『정기 간행물에 공표 된 「사실적 주장」에 의하여 피해를 받은 자는 정정 보도의 게재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정 보도 청구권」이란 언론사와 독자와의 관계에서 언론의 보도에 의해 개인법익이 침해 당했을 경우 신속하게 이를 구제토록 한다는 명분으로 80년 언론 기본법에서부터 도입된 제도다. 정정 보도 청구는 언론사의 의견 표현을 제외한 「사실 보도」에 대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의 주장이나 입증이 필요 없이 포괄적으로 허용되고, 따라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언론 활동을 제약할 수 있어 5공 악법의 하나로 지적돼 모법인 언론 기본법은 폐지됐으나 이 규정은 정기 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그대로 살아남아 6공이 이를 이어받고 있다. 법원이 정정 보도 청구를 받아들이면 해당 언론사는 신청인이 요구하는 제목·내용·크기를 고려, 법원의 결정대로 「정정 보도문」이란 제목으로 게재해야 한다.
이는 민사상 손해 배상이나 형사적 고소·고발과는 달리 보도 내용의 진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신청인의 일방적 주장을 거의 그대로 보장하는데 특징이 있다.
즉 이 제도에 따라 언론사가 게재한 정정 보도는 언론이 스스로 정정 또는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신청인 명의로 작성된 「정정 보도문」을 무료로 보도할 의무만 진다는 점에서 서유럽 등에서 일반화된 반론권·응답권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원 측도 「정정 보도 청구권」은 그 용어와는 달리 언론 보도 내용을 진실에 부합되게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가 아니라 보도 내용에 대하여 신청인이 주장하는 반박 내용, 즉 보도 내용의 진위와 무관하게 피해사실 주장을 보도하는 「반박 보도문」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법원 86년1월28일 판결).
그러나 「정정 보도문」은 「정정」이라는 용어 때문에 언론사가 낸 보도가 잘못 돼 그 내용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로 비쳐져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요소가 된다는 것. 법에 규정된 「피해자」라는 말도 현실적인 피해를 봤다는 의미가 아니고 보도의 사실적 주장에 「관련된 자」를 뜻한다는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선 정기 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정정 보도 청구권의 명칭을 변경하든지, 적용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정정 보도 청구권의 취지가 진실 규명보다 상대방에게도 반론의 기회를 준다는 기회 균등 정신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판결의 기속성에 비춰보면 불합리한 점을 안고 있다.
정정 보도 가처분 결정은 다툼을 한번에 끝내는 실질적인 단심 판결로 소송의 대 원칙인 3심 제도에 어긋나는 측면도 위헌 요소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 동안 법원은 언론의 개인 명예 침해에 대한 책임을 좁게 해석해 왔었다.
판례는 「언론 기관은 취재 활동에 관하여 특별한 조사 권한을 갖지 않고 보도에 요구되는 신속성을 위하여 사실 조사에도 일정한 한계가 존재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취재 자료·근거에 고도의 확실성을 요구할 수 없다」 밝히고 있다 (서울 민사지법 84년4월11일 판결).
이는 개인의 명예 침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언론을 위축시켜 민주 정치의 지주가 되는 보도의 자유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5공의 언론 기본법이 도입한 정정 보도 청구권은 이런 취지와는 달리 언론의 사회적 책임만을 지나치게 강조, 자칫 언론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또 정기 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 3항의 단서 조항에 「청구된 정정 보도 내용이 명백히 사실에 반하는 경우 이의 게재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언론 기관에 뚜렷한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곧바로 언론사에 정정 보도문 게재를 명해 이 조항을 유명무실화시키는 것도 문제라고 법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언론 자유의 연혁적 뿌리를 살펴볼 때 진리를 밝혀내는 것이 언론 자유의 목적인 서구에서와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개인의 「억울함」을 시정해주려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정정 보도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법학자들의 주장도 있는 만큼 이 법의 운용 및 해석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즉 진실성 여부를 제대로 가려 정정 보도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석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