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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동독에도 개혁 요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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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구권 국가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동구권의 우등생」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으나 동유럽의 개혁엔 완강히 반대, 보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동독에서 「호네커」 정권에 반대하는 반체제 세력의 움직임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1월15일 공업 도시 라이프치히에선 인권 운동가 수백명이 모여 구속중인 반체제 운동가들의 석방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데모를 벌였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 국가들이 개혁과 민주화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지금, 루마니아와 함께 개혁을 완강히 거부해 온 동독에도 개혁요구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데모는 경찰이 즉각 개입, 80여명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해산시켰다.
주로 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돼 온 동독의 반체제 운동은 젊은 세대의 대두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등장으로 최근 부쩍 늘고 있으며 운동 내용도 평화 운동·환경 보호 운동으로까지 넓혀가고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의 대응 자세도 강화되고 있다. 87년 말에는 반체제 운동의 거점인 교회와 반체제 인사에 대한 대규모 가택 수사를 했으며, 이에 대해 항의 활동을 벌인 반체제가수 「슈테판·크라프틱」 등을 국외로 대거 추방해 버렸다.
이번 데모 사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의 책자를 제작, 배포한 반체제 운동가들을 당국이 체포·구금한데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동독 정부의 강경 대응 배경에는 경제·소비 면에서 동유럽권에서 동독이 가장 안정되어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소련·폴란드가 기본 생필품조차 부족한 실정인데 비해 효율적으로 잘 조직된 대기업들이 이끌고 가는 동독 경제는 훨씬 좋은 형편에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경제 우등생」 동독 경제의 내용은 정작 빈약하다. 전자 분야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의 기술 수준은 10%만이 국제적 수준에 와있다.
또 동독의 「성공」을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는 국가간 교역을 「국내 무역」으로 처리, 관세를 물리지 않는 서독과의 교역에서 얻는 경제적 이득이다. 동독은 서독 이주는 차관으로 서독 제품을 구입, 그것을 다시 국제 시장에 내다 팔아서 외화 수입을 올리고 있다. 국민들의 생활 수준도 서독에 비해 엄청나게 낮다.
최근에는 「고르바초프」와 「호네커」 사이의 불협화음도 날로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고르바초프」의 연설은 동독 국내에서 대폭적인 검열을 받은 후 보도됐으며 지난해 11월엔 대담한 논조로 유명한 소련 월간지 스푸트니크 (독일어판)를 발매 금지시키고, 「스탈린」 비판 내용의 소련 영화를 상영 금지시켰다.
이 같은 조치에 분노한 모스크바 방송이 동독 정부의 결정을 비난하고 나서자 동독 공산당 기관지 노이에스 도이칠란트지가 스푸트니크의 편집 방침을 공격하는 등 양국은 지난날 중소 대립 초기를 연상시키는 대립 양상을 빚었다.
이번 데모 사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려는 「호네커」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날로 거세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강한 징조며 사태가 주동 인물의 국외 추방 등 종래 방식으로는 쉽사리 진압할 수 없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보인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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