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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투기 한 두 번 안 해본 사람은 「부출」속에 낀다. 부동산은 제법 투기를 아는 사람 몫이고, 하다 못해 주식이라도 한 두 장 사봐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투기 잘 하는 사람 치고 세금 꼬박 내는 바보도 없다. 새우 그물에 고래 빠져나가 듯이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사우나탕에서 땀내고, 골프장에서 세월 보낸다. 이런 사람들 눈엔 월급쟁이들이 땀흘리고 돌아다니는 것이 가소롭게만 보일 것이다. 뒷짐지고 왔다 갔다만 해도 돈이 술술 벌리니 말이다.
영어로는 투기를 「스페큘레이션」이라고 한다. 어원은 라틴어의 「스페큘라리」인데, 『관찰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지금은 영어로 『예측한다』는 말과 함께 경제용어로는 투기가 되었다. 마치 덫을 쳐놓고 망을 보고 있다가 곰이라도 걸려들면 달려들어 덮치는 식이다. 이런 상상을 하며 투기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러나 투기라는 한자어는 원래 불교용어다. 선의 세계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닦아지는가를 놓고 투기라는 말을 쓴다. 가령 범부의 마음도 불제자가 되어 수행하는데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제자의 마음과 스승의 마음이 일맥상통하는 경우. 따라서 「기」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 수행자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그 고상한 말이 세월을 못 만나 투기가 되었다.
미국의 소설가「마크·트웨인」은 그의 소설 『얼간이 윌슨의 비극』에서 사람이 일생을 통해 투기를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경우를 충고하고 있다. 하나는 투기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을 때, 또 한번은 투기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투기로 한 미천 단단히 잡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속으로 얼마나 웃을까. 정말 얼간이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라고 말이다.
국세청은 요즘 부동산 투기혐의자 2천수백명을 가려 뒷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필경 한참 지나면 얼마의 세금을 중과했다는 발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면 국세청은 또 투기혐의자 몇 명의 뒷조사를 한다는 발표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금중과…를 발표 할 것이다.
그 동안 투기꾼들은 사우나탕에서 잠이나 자고, 그 동안 부동산값은 술렁술렁 올라만 갈 것이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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