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성과 변화」의 새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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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시」 미대통령의 짧은 방한 중 남긴 어록 중에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지속성과 변화가 앞으로 한미관계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변화가 필요하거나 불가피할 때 「적극적인 힘」을 제공할 것이고 지속성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결연한 사명감으로 전진하자』고 말했다.
우리가 이 발언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한미관계와 주변정세가 급격한 변화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간의 무역마찰은 「부시」행정부 아래서 「레이건」행정부 때보다 훨씬 강도 높은 압력이 예상됨으로써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북방정책에 대해 우선은 미국이 지지하고 있지만 그 전개 과정에서 양국의 국익이 상치되는 부분이 반드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 남북한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미국의 안보이익과 한국의 .통일지향성 사이에 틈이 생길 경우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일부 한국 국민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반미감정 또한 무시 못할 새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폭넓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미 양국은 40여년간 다져온 유대관계와 이 관계를 부분적으로 재조정해야 되는 필요성 사이에 현명한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제의 으뜸가는 전제는 한국에 있어서나 미국에 있어서 다같이 오랜 양국간의 호혜적 유대관계가 기본 틀로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관계나 북방정책, 그리고 경제적 번영의 지속은 미국과의 관계가 순조롭게 유지되는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미국 쪽에서 한국을 대해온 기본 입장에 질적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한국을 일본의 방위를 위한 전진기지로 보아온 안보위주의 시각을 수정해야될 것이다. 6·25를 전후해 생겨난 그런 시각은 「릴리」 전 대사의 인준 청문회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었는데 이런 시각은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간에 넓게 퍼지고 있는 반미감정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된다.
이제 한국은 「부시」대통령이 지적한대로 경제·정치·외교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고 있는 아시아의 「앞줄에 서있는」나라다. 현재 소련의 적극적 평화공세의 표적이 되고 있는 아시아에서 미국이 계속 영향권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와 같이 성장한 한국이 모든 면에서 필수적인 동반자임을 미국은 기본정책의 전제로 삼아야 될 것이다.
그런 입장의 변화는 지금 한미간의 현안문제로 등장해있는 여러 난제들을 풀어 나감에 있어 서로가 「지속성과 변화」에 균형감각을 유지하게 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내 정치상의 변화가 대미관계를 포함한 모든 대외적 관계의 재조정에 원동력이 되고 있음도 알아야한다. 「카터」와 「레이건」 행정부 아래서 한때 국민여론을 거의 도외시하다시피 하면서 전권을 장악하고 있던 독재자만을 상대로 쉽게 양국관계를 주도해 오던 습성도 오늘날 반미감정의 원인이 되고 있는 점 또한 깊이 성찰해야 될 것이다.
새로 취임한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성향이 그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관계에도 좋은 재평가를 가져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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