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그는 갔지만 그의 제주는 아직도 얼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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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 김영갑의 작품

김영갑 1957~2005
글·사진 김영갑, 다빈치
4만5000원

사진이야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니, 사진책 서평은 허튼 짓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쓴다. 생전 그의 얼굴, 늘 물기 어려있던 눈매, 온몸을 쥐어짜 뱉어내던 한두 마디, 볕 좋으면 앉아있곤 하던 '두모악' 입구의 나무의자, 아직도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이 간 지 한 해가 지났다. 지난해 5월 29일이었다. 임종 지켜본 이 없었고, 유언도 없었다. 남은 건, 30만 롤이 넘는다는 필름과 제주 삼달리의 폐교를 뜯어고친 사진갤러리 '두모악'이 전부다.

1년 전 부고 기사를 쓸 때처럼 고인의 이력을 되짚는다. 충남 부여생이고 서울 한양공고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사진을 독학했고, 20년 동안 제주도에 틀어박혀 섬 풍경만 찍었다. 2001년 온몸의 근육이 마르는 루게릭병(근위축증) 판정을 받았고 '길어야 3년'이란 병원 진단보다 두 해 더 살았다. 지금은 갤러리 마당의 감나무 아래에 가루가 되어 묻혀있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탓인지 사진업계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극적인 삶과, 그 삶을 닮은 듯한 사진 작품이 알려지면서 2~3년 전 갑자기 유명세를 탔다. 이태 전엔 정부가 '두모악'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필름 다 불살라버리고 죽겠다"고 답했다. 말렸지만,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때 설득하지 못했던 게 아직도 걸린다. 지금은 지인 몇몇이 근근이 갤러리를 꾸리고 있고, 그가 자주 올랐던 용눈이오름은 제주의 관광명소가 돼버렸다.

고 김영갑 1주기를 맞아 사진집이 나왔다. 95년부터 2001년까지 그가 파노라마 필름을 사용하던 시기의 작품들만 모았다. 여느 사진에세이 마냥 달콤한 해설 따위는 없다. 책값도 엄청나다. 그래서 권하지 못하겠다. 다만, 부고 기사를 쓸 때처럼 추모사진집 출간을 알린다. 생전의 그는 사진 속 풍경을 "제주의 속살"이라고 말한 적 있다. 지금 다시 보니, 영락없이 김영갑의 속살이다. 고집스런, 슬프도록 아름다운.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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