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62%, 성장 25% 세금으로 메웠다 … 정부주도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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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고 있다. 홍 후보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인사 청문회 때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뉴시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고 있다. 홍 후보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인사 청문회 때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뉴시스]

한국의 성장률과 일자리 등 경제 주요 부문의 정부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기획재정부의 ‘2018년 재정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성장 기여도는 2011년 0%포인트에서 지난해 0.8%포인트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11년에는 성장률(3.7%)에서 정부가 기여한 몫이 없었는데, 지난해에는 성장률(3.1%)의 4분의 1 이상을 정부가 이끌었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각종 재정사업과 사회보장 등 정부 ‘소비’의 기여도가 0.5%포인트, 건설·설비 등 정부 ‘투자’의 기여도가 0.2%포인트였다.

정부 지출, 금융위기 때보다 늘어 #일자리 만들기 54조 퍼부었지만 #고용 악화, 소득불평등 되레 커져 #“정책 실패→재정 투입 악순환 우려”

기재부는 올해 정부의 성장 기여도는 “2017년보다 유사하거나 이보다 다소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0.8%포인트+알파(α)’라는 뜻이다. 무디스가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5%로 예상하는 등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낮을 것이 확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의존도가 더욱 커지는 셈이다. 기재부는 이 가운데 정부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0.7~0.8%포인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중앙정부 총지출 증가율은 지난해 본예산 대비 7.1%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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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도 정부의 재정 투입에 의존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월평균 10만382명의 신규 취업자 가운데 공공부문이 6만2501명으로 62%를 차지한다. 산업별로도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공공행정,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 등의 일자리 증가가 두드러진다. 추 의원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려면 민간 분야가 살아나야 하는데 이 같은 신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재정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정부주도’ ‘세금주도’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경기 하강기에는 정부가 곳간을 여는 게 필요하다. 실제 정부의 성장 기여도는 경기가 나쁠 때 높은 게 일반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성장 기여도는 2.1%포인트로 역대 최고였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여파로 내수가 위축됐던 2016년도 0.9%포인트로 높았다. 문제는 투입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지난해와 올해 본예산 중 일자리 예산 36조원과 두 차례 일자리 추경 15조원, 일자리안정자금 3조원 등 54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고도 일자리 사정은 더 나빠지고 소득 불평등이 커진 게 한 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가 어려우면 재정을 푸는 게 맞지만 지금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책 잘못으로 생긴 구멍을 메우는 데 세금을 쓰고 있다”며 “재정을 효율적으로 못 써 민간을 위축시키고 또다시 이를 재정으로 메꾸는 악순환이 심화할까 걱정”이라고 짚었다.

재정 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간부문의 투자와 소비 진작을 위한 근본 처방보다는 좀 더 쉬운 재정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심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하면 계속 재정을 꺼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나라 살림에 짐을 지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의 재정지출은 공적연금·건강보험·지방교부세 등 법률에 지급 의무가 명시된 ‘의무지출’과 정부가 정책적 의지에 따라 대상·규모를 통제할 수 있는 ‘재량지출’로 나뉜다. 올해는 의무지출이 217조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의무지출의 비중(50.6%)이 재량지출을 넘어섰다. 앞으로 의무지출 규모와 비중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역임한 구정모 강원대 명예교수는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복지성 지출이 증가하면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준다”며 “세수 호황기에는 괜찮겠지만 앞으로 경기 하강으로 세수가 감소하게 되면 재정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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