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일에 종교인 역량 모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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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1 운동은 배타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종교들이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힘을 합쳐 연합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종교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다.
윤이흠 교수(서울대·종교학)는 3·1운동 70주년 기념 종교 학술대회(2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한국 종교 협의회 주최)에 낸「3·1운동의 종교적 의미」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교의 힘이 커진 오늘날 우리의 당면과제인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3·1운동에서와 같은 종교연합 운동이 새삼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씨는『이 땅의 종교들이 종교적 신념체계의 범주를 벗어나 전체 국민이 공유하고 있는 민족애의 역사적 요청에 순응한 3·1운동 때의 종교인의 자세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불교·유교 등 동양고전 종교, 기독교, 그리고 민족 고유의 얼을 찾으려는 동양고전 종교 등 세 가지 유형의 종교가 있다. 이들 세 유형의 종교는 각각 우리가 당면한 오늘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고 접근한다. 기독교가 서구사상의 시각에서 문제를 본다면 불교·유교는 동양의 지혜에서, 민족 종교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전통에서 그 해답의 뿌리를 찾으려 한다.
윤 교수는 이같은 상태에서의 종교들은 먼저 다원주의 윤리를 익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른 종교적 신념과 다른 정치적 이념들이 상대방에게는 나의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이라는 사실이 인정될 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되며 종교 연합운동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독교가 동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한 사회이기 때문에 서양의 정신문화가 어느 피 선교국보다 더 깊게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문화적 충격이 어느 동양사회보다 크고 심각하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에서 종교의 민주화·통일운동은 3·1 운동 때 선배 종교인들이 개별종교인이기에 앞서 한국의 지성으로, 민족혼으로 합쳐졌듯이 오늘의 종교인도 민족정신에 투철하게 민족 역량을 집결시키는 의식이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 윤 교수는 문화적 차이에 근거해 어떤 종교가 타종교보다 자기 세계관의 우월감에 젖어들 때 그것은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민족 공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느 단계에 가서는 오히려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타종교 사회에서 특정종교의 교리적 확신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종교 내부의 합의와 사회전체의 합의를 유도하려는 노력마저도 없이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제언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지적하면서『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앙 이전에 모두가 한 형제며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민족적 역량을 집결하려는 노력이 종교인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종교는 다원주의 원칙의 체득과 실천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
그는 종교계가 이러한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오늘의 문제를 풀어 가는 종교연합 운동을 이룰 때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내세우는 여러 사회집단들도 좋은 교훈을 얼어낼 것이라고 보았다.<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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