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외부 갈라짐은 시멘트로 메꿨을지 몰라도 집 내부는 1년 전 지진이 났을 때 그대로입니다. 1년째 대피소에서 살고 있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한미장관맨션 가동 103호 주민)
"지난해 지진으로 학교가 갈라지면서 보수공사를 한다고 올해 고3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지진을 이겨냈던 선배들처럼 후배들도 많이 긴장하지 않길 바랍니다." (포항여고 교사 우병건)
아파트 내부 갈라진 벽 여전 #대피소에 아직도 이재민 208명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2시29분 경북 포항시 흥해읍 일대(북구 북쪽 8㎞ 지점)에서 발생했던 규모 5.4의 지진. 올해 대입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15일은 포항 지진 1년째가 되는 날이다. 당시 지진으로 135명의 부상자와 1797명의 이재민, 85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그동안의 복구비용은 1800억원, 지금까지 발생한 여진만 총 100회(12일 기준)다. 지난 1년 동안 포항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진을 겪은 시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진 1년…그들이 기억하는 포항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포항시민들은 아직도 지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진으로 풍비박산이 된 약국을 뒤로하고 약을 챙겨 대피소로 달려왔던 약사, 수능이 일주일 미뤄진 데다 여진에 밤잠을 설쳤던 고3 수험생, 진앙과 가까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인 흥해읍의 흥해읍장 모두 지진 당시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문형 흥해우리약국 약사는 "지진으로 선반에서 약이 우르르 쏟아졌고 수도관이 터져서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이 약사는 소화제 등 비상약을 챙겨 지진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까지 포항시약사회에서 약사들이 돌아가면서 대피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재민들이 많다"고 했다.
지진 당시 행사에 참석했다가 급히 사무실로 돌아왔던 박성대 흥해읍장은 1년 전 당시를 '전쟁터'라고 표현했다. 박 읍장은 "황급히 주민들에게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모이라고 방송했는데 초반에 200명 정도에서 이틀째 1500명이 오더라"며 "어지러워 누워있는 사람들, 발 디딜 틈 없는 대피소를 생각해보면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했다.
지난해 고3 수험생이었던 김민정(19·포항여고 졸업생)씨는 수능을 치르고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수능을 하루 앞두고 지진이 발생했고, 시험은 일주일 미뤄졌다. 같은 해 11월 23일 김씨가 수능을 치를 때 고사장 벽에는 온통 금이 가 있었다. 김씨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지진 트라우마가 남아 작은 흔들림에도 예민해졌다"며 "지진 후 재수를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다들 조금 더 힘내서 좋은 결과 있긴 바란다"고 했다.
대피소엔 1년째 거주 중인 이재민 208명
지난 11일 오후 찾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1992년 지어진 이 아파트에는 지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갈라진 벽은 시멘트로 메운 자국이, 아파트 벽에는 낙석을 방지하는 구조물이, 꼭대기에는 비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다.
한미장관 맨션 4개동 240가구 중 82가구(195명)가 현재 지진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 등록된 이재민이다. 흥해실내체육관 이재민 총 91가구 208명 중 94%에 달한다. 이들은 지진 당시 소파·반파·전파 중 '소파(보강 후 사용 가능)' 판정을 받아 이주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파나 반파는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소파는 수리 지원금만 지원된다.
이재민들은 "집 곳곳에 금이 가 고쳐도 살 수 없다"고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대피소 생활을 1년째 이어가고 있다. 포항시에서 운영하는 대피소는 식비 등을 포함해 하루 100만원 정도의 운영비가 든다. 시는 몇 차례 대피소 폐쇄를 논의했으나 갈 곳 없는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현재 표류 상태다. 포항시 관계자는 "당장 나가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맨션 4개 동에 총 1억2000만원의 수리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 수능 고사장엔 지진비상대책 상황반 가동
경북도교육청은 2016년 규모 5.8의 지진을 겪은 경북 경주와 포항 18곳 수능 고사장에 시설물 진동을 측정해 지진 피해 정도와 위험도를 분석하는 지진가속도계측기를 설치했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지진이 났을 때 진앙 위치에 따라 각 고사장에서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계측기가 고사장별로 지진 진도를 측정하는 역할을 한다"며 "혹시 수능 날 지진이 발생하면 측정된 진도와는 별개로 당시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피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14일과 수능일인 15일 이틀간 지진을 대비해 비상대책 상황반이 운영된다. 상황반은 수능운영팀·교육안전팀·지진분석팀·응급대응팀으로 나눠 응급구조대원, 지진 분석 전문가, 시설 안전진단 관계자 등 10여 명이 각각 경주와 포항 지역에 배치된다. 학교 규모·거리 등을 고려한 12개 예비시험장도 지정된 상태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