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대북 경수로 사업 좌초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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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북한 함경남도 신포 경수로 사업을 종료했다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어제 공식 선언했다. KEDO와 북한이 경수로 공급 협정을 체결한 지 10년6개월 만이다.

이 사업은 북한의 핵 동결과 대북(對北) 경수로 2기 제공이 핵심인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로 시작됐다. 그러나 그 후 난항에 난항을 겪어왔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북한이다.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은 이 사업을 지체시키는 악재로 작용했다. 특히 2002년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인정은 경수로 제공에 가뜩이나 부정적이던 부시 미 정부의 판단을 '불가(不可)'로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에 북한도 핵확산금지조약 탈퇴(2003), 핵보유 선언(2005)으로 맞서 결국 이번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이 같은 북.미 공방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선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북한은 우리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면서 뒤로는 동족을 볼모로 한 핵개발에 매진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과 공조했으나 협상에는 끼지도 못하고 경수로 건설 비용만 70%나 부담했다. 이런 비용부담은 가장 위협받는 쪽이 한국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도 '돈만 대고 발언권은 거의 없는' 이런 식의 협상이 정말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권에 따라 입장을 급선회하는 미국의 대외정책도 우리에겐 버겁다는 점이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다. 한국이 1조4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날리고, 북핵 해결은 더욱 요원해져도 자신들의 입장은 끝까지 관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떤 점을 교훈으로 삼을지 성찰해야 한다. 무엇보다 '단선적인 사고'로 정책을 입안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북한의 수용 여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발표한 200만㎾ 전력지원이 대표적인 예다. 무슨 '중대 제안'이라고 포장했으나 북한이 이를 외면하고 경수로를 원하니 답답해지게 된 것 아닌가. 또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금이 사라진 마당에 전력지원을 계속하겠다는 것도 부담이 되지 않겠는가. 상대가 북한이건 미국이건 그 속마음을 꿰뚫을 수 있는 전략적인 마인드 확보가 시급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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