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민심] 한나라 '빅3' 계급장 떼고 대선 앞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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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가 1일 확대 당직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왼쪽은 이재오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고생하셨습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오른쪽)이 서울시청을 방문한 오세훈 당선자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손학규 경기도지사(왼쪽)가 경기도청을 방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당선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뉴시스]

"대전을 이겼고, 최선을 다했잖아요."

1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지방선거 압승 소감은 짧았다. 박 대표는 제주 패배를 얘기하는 당직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퇴원 후 첫 확대 당직자회의를 주재하면서도 말을 아꼈다. 잔잔하고 낮은 목소리로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뒤 "나라의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고, 국가가 부강하고 국민이 편안한 선진 한국을 만드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낮은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사를 위해 찾아온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고 같은 얘기를 했다.

그는 국회의원 재.보선에 네 번째 잇따라 승리하던 지난해 10월 말 "이번 선거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민생을 망치고, 세금폭탄을 퍼붓고, 나라 흔드는 정권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대조적 모습은 표정과 몸가짐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이날 면담자도 많지 않았다. 당사에선 오 시장 당선자를 만난 게 유일했다.

그의 가라앉은 모습엔 테러 상처의 영향도 있다고 박 대표 측근들은 전했다. 박 대표의 손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얼굴의 상처 부위로 향한다는 것이다. 통증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회의 중엔 여럿이 함께 웃다 혼자 아픈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거야(巨野) 견제론'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2002년 지방선거 승리에 이은 대선 패배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여 관계에서도 당분간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윤건영 수석정조위원장은 "여당엔 정책협의를, 정부엔 야정 회의를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 대권 레이스 나서는 빅3=박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한나라당 빅3는 한 달 이내에 현직에서 함께 물러난다. 테러사건과 지방선거 압승이 없었다면 세 사람의 대권 레이스는 출발선이 같았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테러와 선거를 거치며 박 대표는 앞서 있다. 그는 2002년 4.15 총선 때 난파 직전이던 한나라당을 구한 데 이어 이젠 한나라당 '싹쓸이'의 1등 공신이 됐다. 많은 호의적 시선이 승리한 박 대표를 향하고 있다.

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대선은 1년 반이나 남은 긴 경주다. 그런 만큼 국가경영의 내공을 쌓는 데서 대권 레이스를 시작하겠다고 박 대표 측은 말하고 있다. 호의적 시선은 국가 지도자의 면모나 비전을 보여줄 때만 지지로 바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시장이나 손 지사 역시 사정은 다를 게 없다.

빅3는 당분간 대중 연설을 자제하고, 삶의 현장을 찾거나 외국을 방문하고, 교수.전문가와 토론하는 '정치권과 거리두기'방식으로 대권 레이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어차피 박 대표는 테러 여파로 요양기간이 필요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국회의원인 박 대표와 달리 공직에서 벗어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선한 이미지로 새롭게 등장하는 일종의 '오세훈 효과'를 세 사람은 모두 기대하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캠프'를 꾸리는 작업이 상당기간 늦춰질 것은 물론이다.

한나라당은 전례 없는 선거 압승으로 고무돼 있다. 한나라당 후보는 전국 여러 곳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를 더블 스코어의 격차로 제압했다. 선거 패배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정국 주도권을 갖게 됐다. 전국적 지방권력을 장악해 대선 승리를 위한 기초도 다졌다.

지방선거를 승리로 끝낸 세 사람은 이제 각자의 출발선에 섰다. 자신들의 지지율 합계가 대략 한나라당 지지율 합계와 비슷하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면서다.

최상연.강주안 기자 <chois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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