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했던 「일왕 조문 규탄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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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1일 오후6시30분 서울 연지동 한국 기독교 회관 2층 강당에서는 전국 민족 민주운동 연합(전민련)이 주최한 「전범 히로히토 조문 규탄 대회」가 열렸다.
2백명은 충분히 수용함직한 넓은 강당에 모인 청중은 고작 50여명.
전민련 측은 이 점이 몹시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
『지난 주말 대학로 집회 때 그랬던 것처럼 오늘 행사에도 경찰이 원천 봉쇄하리라고 지레 짐작한 때문인지…』
『현 정권 반대시위로 힘을 소진, 홍보가 부족한 탓으로…』 전민련 측은 묻지도 않은 일에 해명(?) 까지 했다.
그러나 대회장에는 10여명의 일본 보도진이 몰려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취재하는 등 법석을 떨어 그들의「관심」을 짐작케 했다.
『취재기자이기 전에 일본인으로서 이 대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한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강사들은 열변을 토했다.
계훈제 전민련 상임 고문은 기조 연설을 통해「히로히토」를「한민족과 인류의 적」으로 규정하고『「악마의 주검」에 분향해야겠다는 친일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일 교포의 지문날인 거부운동에 앞장서온 최창화 목사(59·일본 기타규슈 교회)는 1백만 재일교포들이 현재도 일본사회에서 받고 있는 멸시와 핍박에 대해 울분을 토한 뒤 정부측에『당당한 자세로 대일 외교에 임해줄 것』을 요구했다.
백기완 통일문제 연구소장은『미국의 침략적 동북아 정책과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하고『현 정권은 지지기반의 취약과 정통성의 결여로 굴욕적인 외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규정지었다.
많지 않은 청중을 앞에 놓고 일왕조문 반대를 소리높이 외치는 강사들도 조문을 해야한다는 논리의 근거와 다르지 않은 현실적 국가 이익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러나 걸핏하면 수백명 씩은 모이던 재야 집회가 이날은 유달리 쓸쓸해 보였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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