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사건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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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의도 농민 시위에서 벌어진 폭력·파괴사태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을 계기로 경찰이 시위진압 방식을 강경으로 바꾸고 정치권이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아전인수격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상황에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발생한 폭력과 파괴행위를 개탄하고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돼야 할 것으로 믿는다. 확실히 이번 사태는 폭력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높였으며 최근 일부 학원이나 노사분규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화 경향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바라는 여론을 고조시켰다.
이런 국민적 경각심과 여론이 그동안 미온적·수동적으로 보이던 공권력에 자극을 주어 당국이 폭력현상에 적극적 대처를 다짐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경찰은 지금까지 평화적 시위는 보호하고 가급적 「인내작전」으로 사태의 악화를 피한다는 자세를 보여왔는데 여의도 사태후 여권에서는『왜 경찰은 맞고만 있느냐』는 울분이 쏟아지고 일부에서는 이제부터「방어적 진압방식」이 아니라 「공세적 진압방식」을 채택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최루탄도 적극 사용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경찰이 폭력시위를 단호히 저지하고 폭력은 적극 응징해야 한다고 믿지만 경찰이 맞지 않고 때리는 방식으로 나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본다. 사전파악과 사전봉쇄가 그것이다. 죽창을 깎고 다발로 묶어 버스로 집결할 때까지 아무런 정보와 대비가 없었다면 경찰이 할 바를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전 대비책은 세우지 않고 강경 진압만 하겠다는 것은 무성의한 태도다. 최루탄은 적게 쓸수록 좋다. 데모 진압과정에서 다시 과잉 진압이니 인권유린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 여의도 사건의 수사에 있어서도 시위와 폭력은 구별해야 할 것이다. 처벌 대상은 어디까지나 폭력이지 시위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수사도 여의도 폭력의 행사자·가담자·선동자·배후 조종자 등을 색출하는 일과 단순히 시위를 조직하고 준비한 일은 구별하여 진행돼야 할 것이다.
여의도 사태후 우리를 가장 실망시킨 것은 정치권의 대응이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사태의 원인을 따져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정치권의 당연한 할 일인데도 여당은 호기나 맞은듯 이른바 「체제수호론」적 논리나 펴고 있으며, 야당은 대정부 공격에나 열을 올리고 있다.
왜 농민들이 이처럼 조직화되어 격렬하게 분노를 폭발시켰는가. 정치권이 농민불만이 이처럼 터지기 전에 제대로 농정을 다루고 개선방안을 마련했던들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6공들어 정치권은 농정뿐만 아니라 철거민 문제나 학원문제, 근로자문제, 교통· 치안문제 등 우리사회의 각종 크나큰 문제중 무엇하나 제대로 다루고 개선책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5공 청산을 한다고 매달려 왔지만 그나마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가장 정치의 본질이 돼야 할 국민의 절박한 관심사는 거의 외면해 왔다. 이번 여의도 사건의 원인이 된 고추나 수세문제도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정치권에서는 진지한 토론 한번 없었다. 이제와 야당은 정부를 비난하고 여당은 야당의 관련 혐의나 흘리는 것이 고작 할 일인가.
그리고 여든 야든 아무리 지지표가 좋더라도 폭력만은 안 된다고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할 것이다. 폭력 가담자라면 자당의 지지자라도 처벌을 감수하는 것이 옳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여의도 사태에서 겸손하게 교훈을 얻고 국민의 절박한 생활 문제를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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