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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염병 피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경찰이 어디 적입니까. 탱크까지 부순다는 화염병을 사람에게 던져 도대체 어쩌겠다는 겁니까….』
서울 홍익동 16의1 국립경찰병원608호.
13일 있었던 농민들의 시위에서 화염병에 맞아 입원한 서울603전경대 36중대 2소대 소속 박규수 상경(22)은 3도 화상으로 벌겋게 부풀어오른 왼쪽 목 언저리의 아픔보다 이 나라를 함께 가꾸어가야 할「같은 젊은이」들끼리 「너」와 「나」로 갈라져 화염병을 던지고 최루탄을 쏘아야하는 야속하기만한 현실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남해남이 고향인 박상경은 이리 원광대 행정학과2학년에 재학중이던 87년7월15일 입대, 전경생활19개월째인 13일 오후4시쯤 국회의사당에서 전경련회관 쪽으로 1백50m쯤 떨어진 삼환빌딩 앞에서 1천명 가량되는 시위대와 맞닥뜨렸다. 소위 인내진압을 위한 몸싸움대형으로 시위대와 맞서려는 순간 10여개의 화염병이 날아들었고 동료전경 1명의 옷에 불이 불었다. 마침 소화기를 들고 있던 박상경이 달려가 동료의 옷에 붙은 불을 꺼주고 제자리로 가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다시 시위대로부터 날아온 화염병을 맞았던 것. 전치 3주.
박상경은 그래도 나은 편. 이 병원 611호실에 6개월째 입원중인 김경석 경위(53·가명)는 정년5년을 남기고 화염병으로 인해 인생 말년을 망친 케이스. 서울마포경찰서 D파출소 소장으로 근무하던 김경위는 지난해 8월10일 이른바「8·15남북학생회담」과 관련, 시위중이던 서강대생 20여명이 오후 7시쯤 파출소 안으로 던진 화염병 5개가 터지면서 온몸에 불이 붙어 전신에 3도화상의 중상을 입었던 것.
김경위는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으나 상처부위의 통증이 여전할 뿐 아니라 한꺼풀 벗은 얼굴엔 붉은 반점이 남아있고 시력·청력마저 회복 불능으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K대를 나와 62년 경찰에 투신한 김경위는 『젊음을 다 바친 경찰복을 정년을 앞두고 이렇게 벗어야 되느냐』며 『민주화도 좋지만 화염병만은 없어져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화염병으로 인한 인적피해는 경찰관1명 사망과 중경상8백94명(민간인5명 포함). 경찰병원에 입원한 환자가운데 지난해 시위부상자는 3백30명으로 이 가운데 경찰관8명, 전경·의경92명 등 모두 1백명이 화염병으로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에 대한 치료비만 해도 20억원 가량. 현재도 10명의 화염병환자가 경찰병원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있다. 『골절이나 다른 외상보다 화염병으로 인한 부상은 치료기간이 길뿐더러 치료 후에도 후유증이 심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병원 한 의사의 말이다.
격렬한 시의가 예상되는 오는3월 신학기에는 기존의 화염병 대신 휘발유와 황산을 섞어 만든 「고성능 신종 화염병」이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에 경찰의 걱정은 한층 더 커졌다.
72년 특별법을 제정한 일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국가들이 형법에 들어있는 폭발물사용 등에 관한 죄로 화염병 사용 등을 엄벌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여서 우려나라에도 화염병에 관한 법이 어떤 형태로든 등장할 움직임이지만 법 이전에 범국민적 운동을 통해서라도 「화염병 망국」은 막아야 한다는게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인 것이다.
서로의 깊어진 갈등을 화염병으로 해결하려 서두르는 「화염병 폭력」은 더 이상 설자리를 없애야할 것이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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