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후 현금 입막음, "부인이 운전" 거짓말까지 한 현직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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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이 뺑소니 사고로 입건됐다. [사진=뉴스1]

현직 경찰이 뺑소니 사고로 입건됐다. [사진=뉴스1]

현직 경찰이 뺑소니 사고를 낸 뒤 부인이 운전한 것으로 거짓 진술을 하다 들통났다. 목격한 택시운전자에게 현금을 주고 입막음을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서울 동대문경찰서 경무과 소속 손모(52)경위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 위반(도주차량)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손 경위는 지난 9월 28일 오후 8시 45분 중랑구 망우역 인근 한 2차로에서 마주오던 버스전용차로를 지나던 버스와 충돌 후 그대로 달아났다. 인근 주유소에 정차 중이던 택시기사가 사고를 목격하고 쫓아가자 차에서 내린 뒤 택시 창문 틈으로 45만원을 건네며 ‘신고 말아달라’ 부탁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택시기사는 "이 돈 받은 게 영 걸린다"며 경찰서에 직접 찾아와 진술했다고 한다.

사고 버스기사의 신고로 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차량 번호를 추적해 손씨를 사고 당일 경찰서로 불렀다. 손 경위의 부인 김모(48)씨가 ‘운전자’라며 경찰서에 왔고, 손 경위는 동승자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버스기사‧택시기사의 진술로 운전자가 남성인 것을 확인한 경찰은 손 경위를 추궁했고, 손 경위는 본인이 운전 후 도주했으며 동승자는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남편이 경찰 신분이라 걱정된 부인이 ‘내가 운전했다고 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일 조사 당시 경찰은 김씨와 손 경위에 대해 모두 음주측정을 했다. 김씨의 측정 결과는 깨끗했지만 손 경위는 0.1%가 넘는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가 나와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김씨는 “사고 후 집에서 놀라서 걱정돼서 술 한잔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후 행적 조사에서 퇴근 후 음주 목격자가 없고, 집에 실제로 소주 1병과 캔맥주를 마신 흔적이 있어 경찰은 현재까지는 ‘사고 후 음주’로 판단해 음주운전 혐의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유턴이 안 되는 좁은 길에서 중앙선 침범하는 등 행적에 음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며 손 경위의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추가 조사 중이다.

경찰은 현재 손 경위에게 특가법 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사고미조치, 범인도피방조죄 등 3개 혐의 적용해 조사 중이다. 부인 김씨에 대해서는 ‘자신이 운전했다’ 주장해 범인도피죄로 입건했지만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다. 동대문경찰서는 "사고 이후 손 경위를 대기발령 조치했으며, 중랑서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 징계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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