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만에 환국하는 조선왕조실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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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3월 월정사 정념 스님, 봉선사 철안 스님,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 등이 참여한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가 구성돼 일본 측과 반환 협상을 벌인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해 10월 북관대첩비에 이어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잇따른 반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이 민간의 노력으로 반환돼 대단히 반갑다"며 "이번 실록의 보존 방안을 관계자들과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 조선 최고의 기록문화='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왕들의 행적을 편년체(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방식)로 정리했다. 20세기 초까지 태백산.정족산.적상산.오대산 4곳의 사고에 보존돼 왔다. 그중 1913년 조선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일본으로 반출했던 오대산 사고본의 실록이 이번에 돌아오게 됐다.

'조선왕조실록'(국보 151호)은 조선 태조 때부터 철종 때까지 25대의 왕이 재위했던 472년(1392~1863)의 역사를 기록한 한국의 대표적 문화재다.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상세하게 담겨 있다. 총 1893권 888책으로 이뤄졌으며, 1997년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26대 고종과 27대 순종의 실록도 남아있으나 두 실록 모두 일제시대에 편찬됐고, 조선왕조의 엄격한 편찬 규정에도 맞지 않게 기록돼 '조선왕조실록'에선 제외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적 진실성이 매우 높은 자료다. 조선왕조는 사관(史官)이라는 독립된 직책을 둬 역대 왕들이 실록 편찬에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했다. 기록의 세밀함과 방대함 등으로 볼 때 조선이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록문화를 이룩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 잘못된 역사 바로잡기=오대산 사고본은 양적으로 많지 않다. 1923년 일본 관동(關東)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됐기 때문이다. 당시 화(禍)를 면했던 27책이 32년 경성제국대학에 이관돼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돼 있으며, 이후 새로 확인된 47책이 이번에 돌아오게 됐다.

하지만 학술적 가치는 크다. 서울대 이태진(국사학과) 교수는 "일제가 강탈해 간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그간 한국과 일본의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부 차원이 아닌 대학.민간 차원에서 약탈 문화재의 반환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정치.문화 등 향후 양국의 현안을 풀어 가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오대산 사고본의 특수성도 강조했다. 오대산 사고본은 임진왜란 당시 살아남은 전주 사고본을 모태로 새로 실록을 간행하면서 원본 격에 해당하는 전주 사고본과 오자.탈자 등을 대조해 실록의 교정 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설명했다.

오대산 사고본 이외의 다른 사고본은 현재 남한과 북한에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강화도 정족산본 1181책(서울대 규장각 소장), 태백산본 848책(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 등이 보존돼 있다. 68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72년 민족문화추진회가 국역사업을 시작해 93년 번역을 완료했다. 95년에는 '조선왕조실록 CD롬'이 선보였으며, 인터넷(sillok.history.go.kr)에서도 본문을 검색할 수 있다. 북한에서도 적상산본을 이용해 91년 실록 전체를 완역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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