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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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는 그 자신이 난봉꾼이었다. 창녀, 혼혈아, 여배우 등 그의 여성편력은 화려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그에게 오히려 시인의 영감을 더해 주었다고도 한다. 그 자신의 말을 빌면 신사의 면모까지는 잃지 않은 셈이다. 그가 말하는 신사의 기준은 세 가지.
첫째 탐미주의자일 것(딜러탄티즘). 둘째 자기만 알 것(에고티즘). 셋째 탈속주의자일 것 (아리스토크라티즘).
그러나 영국식 신사의 조건은 좀 다르다. ①교외에 주택을 갖고 있을 것. ②빅토리아 시대의 가구를 소유할 것. ③관록이 붙은 마차를 타며 그 옆엔 개도 태우고 다닐 것. ⑷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하기 쉬운 골프를 경멸할 줄 알 것.
영국신사는 자본주의 나라답게 먼저 물질적인 조건부터 따지는 것 같다.
최근 일본의 한 경제잡지가 제시한 일본의 「귀족적 부자」를 분류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첫째 보수본류. 정·재계 인사들, 오래된 기업의 창업주들. 둘째 뉴 리치. 새로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사람들,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 세째 부노 리치. 땅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 주식 투자로 재미본 사람들, 재산이 많은 사람들. 네째 유사 리치.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고급 브랜드의 옷이나 장신구만 찾는 사람들.
최근 우리나라에선 한 대학 교수가 어느당 세미나에 참석, 극우의 조건을 이렇게 명시한 일이 있었다.
『양담배를 피우고, 호텔 사우나에 가고, 비싼데서 식사하고, 좋은 자동차를 타며, 지갑에서 쉽게 수표를 꺼내는 사람』
신문 가십은 『그렇다면 우리 당에도 극우가 많은 셈』이라는 당 관계자의 코멘트까지 인용하고 있다. 그 말의 진부는 그쪽 집안에서나 흥미를 돋울 얘기지만 우리는 극우의 참모습을 고작 그 정도로 밖엔 평가할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 정의된 「극우」는 사실 극우이기 보다는 그저 호화 취미를 가진 리치이거나 일본 식으로 말하면 유사리치, 좀더 가혹하게 얘기하면 도덕적으로 의심을 받을 만한 사람들일 뿐이다. 극우는 문자 그대로 우익중에서 극단적인 견해와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바로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긍정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양담배나 사우나를 극우로 몰아치는 것은 화염병을 무조건 극좌로 몰아치는 것과 같은 논리일 뿐이다. 우리 시대는 우선 말부터 뉴트럴하게 선택할 줄 아는 여유가 좀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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