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물가정책, 있나 없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즈음 같아서는 정부의 물가정책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물가정책이라는 게 조변석개 식이고, 즉홍적이고, 무원칙하여 정부에서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부는 올해 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물가문제를 올려놓고 기필코 물가는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해 놓고서도 물가를 자극하는 시책을 적지 않게 썼다. 언제는 금리가 오를까봐 돈을 풀더니 이제는 바짝 돈줄을 죄겠다 하고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던 공공요금은 고삐가 풀린 상태다.
지난 1월중 도매물가가 0·2% 떨어지고 소비자 물가가 0·2% 밖에 안 올랐다 해서 여유를 보이던 정부도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총력을 기울여도 물가가 잡힐 수 있을지 의문이고 조금만 방심해도 그나마 5공의 유일한 대변자산인 안정된 물가를 까먹고 경제안정이 크게 흔들릴 위험을 안게 되었다.
지금 물가 불안과 인플레 기대심리는 진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고조되고 있어 이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가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부에서 돈줄 죄기, 부동산 투기억제 대책, 물자수급 계획 등 이것저것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물가상승요인이 워낙 복합적이어서 간단치가 않다.
올해 물가상승은 지난해부터 예상된 현상으로, 정부 민간 모두에 책임이 있지만 정부가 더 책임을 느껴야 한다.
정부는 국제수지 흑자로 풀린 돈 관리를 제대로 못했고, 선거때 많이 풀린 돈을 효과적으로 수속하지 못했다. 선거 공약으로 일어난 개발붐, 증시 부양책이 투기심리를 부채질하더니 최근에는 대 북한 교류에 편승해 토지 투기양상이 심각한 국면이다.
올해 들어서는 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시외버스, 철도 소화물 요금을 두자리 숫자나 올린 데 이어 지하철요금, 의료수가, 우편료, 상수도료, 중·고교 공납금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게 되어있다. 공공요금이 오르니 고삐 없는 민간 서비스 요금 등은 얼마나 많이 오르겠는가. 민간경제는 정부가 하는 일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편승한다. 정부에서 공공요금을 크게 올려놓고 기업들에만 공산품 가격인상 억제를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 소비자 물가억제 목표는 5%지만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은 15%까지 있다. 서울의 요지 대형아파트 평당 값이 7백만원 대에 육박하고, 부동산 투기가 아파트·땅 가릴 것 없이 만연되며, 시중에 넘치는 돈이 마땅한 투자대상을 못 찾아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상황이 계속되면 올해 물가는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
정부에서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같다. 통화대책 문제도 그렇지만 분양가 자율화 방침을 내놓아 아파트 값만 올려 놓더니 또 이와 비슷하게 40∼50평 이상 아파트와 단독주택도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정책이 일관성 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 물가는 춤을 춘다. 돈이 넘치면 돈을 거둬들이는 것 등 물가 요인별로 대증 요법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림 없는 근본대책이다.
지금 정부가 복지·균형, 혹은 개발 발전 계획이다 하여 엄청난 액수의 돈을 턱턱 책정하는 식으로 씀씀이가 푸짐한 사이 은연중에 인플레 기대 심리가 확산·심화된다. 정부에서 알뜰한 나라 살림을 수범하면서 일관성 있는 반인플레 정책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방법 외에 달리 물가를 잡을 길이 없다고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