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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것과 진배없는 것도|가격은 절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가구를 물물교환 합니다」
강남사당동 이수교 입구에서 과천방향으로 1km남짓 이어지는 거리양편에는 전국에서 드문 중고가구시장이 있다.
가구교환센터·가구백화점·중고가구전문점 등의 비슷비슷한 간판들이 말해주듯 주로 쓰던 가구들을 맞바꾸거나 싸게 파는 점포들이 모여있다. 잦은 이사로 귀퉁이가 닳은 평범한 장롱들에서부터 부잣집에서 흘러나온 희귀한 고급가구, 외제가구, 고가구, 각종 사무실·업소용 집기 등에 이르기까지 각지에서 수집돼온 온갖 가구들이 한데 들어차 가히 「가구만물상」을 이루고 있다.
휴일에는 주변 주택가·아파트촌에서 구경나온 주부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고 평일에도 이들 물건을 실어내고 실어오는 운반차들로 연일 분주하다.
수공예품을 중심한 고급 가구상들이 밀집한 논현동 영동네거리일대나 고물상에서 시작, 덤핑물건이 중심인 신당동 중앙시장 가구골목, 영세업체들의 싸구려가 주종인 아현동 가구거리 등과는 달리 당초부터 중고가구로 출발한 이 일대 가구상들이 오늘날처럼 성시를 맞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초반.
사람들의 사는 형편이 나아지고 특히 강남개발 붐이 본격화되면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여 72년께 4개 정도이던 주변 중고상들이 70년대말 40여개로 늘고 8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배로 늘었다. 현재는 방배동일대 10여 곳을 포함, 1백20여 점포가 성업중.
이 거리의 산증인으로 17년전에 정착, 현재는 2백여평 규모의 점포를 4개나 운영하고 있다는 중앙가구 물물교환의 김봉선(73)씨는 『가구공장을 하다가 제조물건을 팔기보다는 쓰던 것을 헐값에 파는 사업이 낫겠다 싶어 이 일에 손을 댔다』며 『초반에는 집 장수들과 부잣집들, 이민가는 사람들이 주고객이었는데 요즘에는 부동산투기로 이사가 갖은 중산층 주부들이나 해외체류자들, 알뜰 신혼부부에 이르기까지 팔고 사는 층이 넓고 다양해졌다』고 변화를 말한다.
때로는 채무문제로 급하게 팔아치우는 것이나 이혼하면서 통째로 나오는 것 등 사연이 달린 물건도 심심찮게 들어오는데 전화 한통화로도 그 가정의 사정이나 대상가구의 가격정도를 꿰뚫을 수 있게 됐다고 김씨는 귀띔한다.
그러나 역시 주요 고객은 이사 등을 계기로 가구도 보다 나은 것으로 바꿔볼 욕심으로 나오는 30∼50대 주부들.
아예 장롱에서부터 소파·부엌가구 등에 이르기까지 가구 일체를 개비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단위가 클 때는 한번에 수천만원어치씩의 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
그래도 일단 이 상가로 들어오면 중고품으로 평가 절하되는 만큼 불과 1,2개월 쓴 새것과 진배없는 것이라도 가격은 일단 절반이상이 꺾여 시중에서 새것을 살 때 보다 엄청나게 싸게 산다는 얘기다.
예컨대 크기가 맞지 않아 내놨다는 머리장이 2개 딸린 10자짜리 나전칠기장롱의 경우, 흠간데 한곳 없는데도 시중에서 8백만원선인데 이곳에서는 3백50만원내외에 거래되고 있으며, 1백30만원에 샀다는 3년정도 쓴 5인용 가죽소파가 40만원대, 멀쩡한 4인조 등나무 식탁이 시중가의 3분의1선인 28만원정도다.
그런가하면 흔히 구경하기 힘든 벨기에제 소파 6인조가 1백25만원, 미제문갑 6단짜리가 8만원선에 나와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가구대메이커나 대리점, 관련납품업체들에서 흘러나오는 덤핑물건이 늘고 있는 것이 새로운 변화다.
일체 현금거래인 이 상가의 매력 때문에 점차 물량이 많아지고 있는 이들 덤핑물건은 새것임에도 가격은 중고시세여서 소비자들에게도 인기다.
13만원은 줘야 사는 대리석으로 된 식탁이 5만4천원선, 공장도가가 27만원으로 붙은 6인용 코너소파가 14만원, 27만원인 유명메이커 침대가 10만원정도, 그리고 유명 메이커걸상이 정가의 반을 밑도는 1만원선에 선보이고 있다.
사당물물교환의 이영제씨(45)는 요즘 취급물량의 거의 절반정도가 이들 덤핑 신품들이라며 「부동산경기가 뜸하고 가구수요가 끊어지는 요즘 같은 겨울무렵이 이런 좋은 것들을 보다 싸게 접할 수 있는 때』라고 권한다.
상가에서 만난 한 주부는 『고급스럽고 신기한 가구들을 구경할 수 있어 심심풀이겸 몇번 와봤다』며 물건들이 괜찮아 이번 봄에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옮길 때 식탁과 장식장을 마련해볼 참이라고 말했다.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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