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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탐·구 ⑭ 강원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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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열린우리당 이창복 후보는=30여 년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재야의 활동가이자 구심점이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원주대 강사 생활을 하던 27세의 청년 이창복은 "강의와 현장을 접합시킨다"며 원주 시내 걸식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1967년 그는 강단을 뛰쳐 나와 '쌍다리' 아래 넝마주이 청소년들의 움막으로 거처를 옮겼다. 글과 먹고 살 기술을 가르쳤다. 그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이들은 주민등록증을 얻었고, 수용 시설인 '시립 자활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대학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고 지학순 주교의 조언으로 71년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회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한국교회산업선교협의회.전국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경력에는 네 차례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도 들어 있다.

99년 그는 새천년민주당의 창당 발기인을 맡으며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다음해 총선에서 당선됐다. 16대 의정 활동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나라당 후보와 지지율 차이가 벌어지지 않았나.

"출발은 그랬다. 하지만 한나라당 도지사가 도민의 발전 욕구에 부합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영서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만회가 가능하다."

-민주화 운동의 경험과 도지사로서의 행정력은 무관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30여 년간 전국 규모의 민주화 운동을 조직.조율했다. 각양각색의 운동권을 통합했다. 강원도 내 지자체 간 이견, 중앙정부와 강원도 간 예산.정책 조정에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현장 능력이다."

◆ 한나라당 김진선 후보는=카바이트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비가 없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다 중학교 은사에게서 입학금 2800원을 받아 북평고에 진학했다. 고3 때 한일협정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1969년 십자성부대 헌병으로 베트남 남부 냐짱에서 1년 동안 근무했다. 1974년 행시 15회에 합격한 뒤'강원도 홍천군 수습행정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영월군수, 강릉시장, 강원도 기획관리실장.행정부지사 등을 역임한 강원도 전문가다. 2010년 겨울올림픽 평창 유치 실패를 거울삼아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게 김 후보의 포부다. '심지기위의(心之起爲意.마음이 일어나면 뜻이 된다)'는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빈틈없고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처럼 '완벽주의자'로 꼽힌다. 독실한 불교 신자다.

-지난 8년간의 도정(道政)이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기본적으로 강원도정은 다른 시.도에 비해 열악하다. 그러나 겨울올림픽 유치 노력 등으로 도약의 기반이 확고히 다져졌다. 3각 테크노 전략의 실행과 720개의 기업 유치, 1만5000개의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도 있었다."

-원주가 혁신도시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지역 갈등이 많이 부각됐다.

"지역 간 경쟁은 다른 시.도에도 있었다. 혁신도시 선정 과정은 갈등이 아니라 경쟁으로 봐야 한다. 강원도는 지역별 특성이 뚜렷하다. 춘천은 기업 특화단지로, 강릉은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조성하는 등 혁신도시 선정 과정의 후유증 극복을 위해 다양한 치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 민주당 유재규 후보는=강원도청 공무원으로 출발, 1981~93년 철원.횡성.홍천 등 다섯 곳의 군수를 지냈다. 강원도청 근무까지 더하면 18년을 강원도 행정 일선에 있었던 셈이다. 유 후보는 그래서 "강원도 곳곳의 지역 사정을 꿰뚫고 있는 최고의 강원도정 전문가"라고 주장한다. 그는 16대 총선에선 홍천.횡성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그간 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을 맡아왔다.

◆ 국민중심당 유승규 후보는=첫 직업이 광원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광산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 개선을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함태탄광노조위원장.전국광산노조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정계에 진출한 것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승리했다. 그 후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돼 '막장 채탄부들의 희망'으로 불리기도 했다.

채병건.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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