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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의 저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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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는 밤마다 괴상한 춤을 추며 백인을 저주하는 주문을 외웠다. 시체를 소생시키고 정적(政敵)도 마음대로 죽인다고 했다. 그 자신 죽음의 신이라 칭했다. 최고의 샤먼에 오른 그는 아이티를 죽음의 나라로 만들었다. 아이티의 전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통령 이야기다.

아이티 인구의 90%는 흑인이다. 식민지 시절 스페인과 프랑스는 흑인 노예들을 끌고 왔다. 이때 아프리카 서해안 폰족(현재 베냉공화국)의 토속신앙인 부두교도 묻어왔다. 초자연적 존재를 숭상하면서 제사 때 피(血)를 바치는 토템 신앙이다. 악마숭배와 주술도 빼놓을 수 없다. 독립 이후 아이티는 한동안 부두교를 국교로 삼았다.

1863년 아이티의 부두교 샤먼들이 여성을 납치해 죽인 뒤 인육을 먹은 사건이 일어났다. 가톨릭 지배층이 탄압을 시작했다. 앙심을 품은 샤먼들은 대통령 딸을 살해했다. 부두교는 이때부터 자신을 위장하면서 지하로 들어갔다. 백인 고용주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톨릭 의식을 받아들이고, 일부는 이슬람 제례까지 혼합했다.

부두교는 밤중에 은밀히 모여 북소리에 맞춰 격렬하게 접신(接神)한다. 엑스터시를 느끼게 한다며 약물을 사용해 신도들을 혼수상태에 빠뜨리기도 한다. 샤먼은 돈을 받고 원하는 상대에게 저주를 내리고, 살아 있는 동물을 잔혹하게 죽여 신에게 바친다. 그런데도 부두교는 지금 아프리카는 물론 미국.유럽 흑인사회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사교로 손가락질 받던 부두교의 '악마의 의식'이 관광상품이 될 정도다.

독일 월드컵에서 토고가 부두교를 비밀병기로 들고 나왔다. 토고의 부두교 샤먼들은 "축구팀 승리를 위해 주술을 준비하고 있다. 토고가 승리할 것"이라 장담했다. 외신들은 코트디부아르 에피소드까지 곁들인다. 이 나라 축구팀은 10년 동안 패배만 거듭하다가 국방장관이 주술사 마을에 2000달러를 내고 물약 한 병을 사들인 뒤 승승장구한다는 것. 그 덕분인지 코트디부아르는 월드컵 본선에도 처음 진출했다.

한마디로 섬뜩한 기분이다. 토고 주술사들이 저주의 주문을 외우며 한국 인형을 마구 찔러 대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역대 최강의 샤먼이라는 뒤발리에 일가의 운명을 보면 안심이다. 아버지 파파 독과 아들 베이비 독은 30년 넘게 독재를 하다 민중봉기로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비책이 있다. 4000만 붉은 악마의 응원이다. 악마의 주술에는 붉은 악마의 함성으로 맞서는 게 특효약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