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문학다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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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화의 진통과 열망이 치열하게 첨예화되었던 격낭의 80년대를 마감하는 금년벽두부터 문학의 정치성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문학이냐, 문학본질로서의 문학이냐는 논쟁은 이미 60년대의 「순수」와 「참여」 논쟁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껏 대립개념으로 팽팽히 맞서온 문예사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는 민중문학과 인간에 대한 내면적 질문을 상상력과 자유의 정신으로 탐구하려는 전통문학과의 20여년에 걸친 끈질긴 대결은 냉전체제 속의 좌우갈등 못지 않게 서로를 수용할 수 없는 대결의 논리로 발전되어 왔다.
특히 문학예술분야에 있어 탄압과 검열의 극치를 이뤘던 제5공화국의 압제 아래서 민중문학론은 문학을 현실 정치의 변혁을 부르짖는 메시지로서, 소외된 노동자·농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층세력의 도구로서, 민주화 실천을 위한 격렬한 거리의 운동으로서 확산됨에 따라 오늘의 민주화 시대를 여는데 매우 중대한 기여를 했음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반독재·반체제의 전위적 역할을 담당했던 민중문학론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압제와 탄압의 굴레가 벗겨지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학예술의 욕구가 기대되고 있는 오늘에 와서까지 문학이 선동의 정치성을 띠어야하고 변혁운동을 위한 문학의 「복무」를 강요하는 주장에 대해 우리는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80년대 중반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학현상은 전통적 문학형식을 저속한 중산층 지향성의 관제문화로 규정지으면서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노동자·농민계급을 영웅적 인물로 부각시키고 민중문학의 궁극목표를 통일지향에 두고 있다.
이러한 도식적 계급문화 접근방법이 곧 문화예술에 대한 억압장치이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이미 현실적 적응 속에서 실패로 끝났음이 소련과 중국에서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의 문화풍토에서 극복의 대상이기는커녕 심화·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문화적 후진성을 실감하게 된다.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민주화에 기여한 노력만큼 그것의 「문학다움」에 있어서는 많은 대가를 지불한 채 문학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음이 지난 한해의 문학성과에서 입증되고있다.
「문학다움」이란 이데올로기와 계급의 이익을 떠나 문학 자체가 탐구의 대상으로 해왔던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끝없고 다양한 질문과 함께 그 질문을 던지는 문학적 미학체계가 동시에 성공을 거둘 때 일어나는 반응이다.
문학이 삶의 총체를 반영하는 거울이고, 삶의 본질을 규정하는 행위라고 할 때도 그것의 접근방법은 문학다운 스타일을 갖춰야만 문학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게될 것이다. 소외된 삶의 모습을 그렸다해서, 또는 노동자가 쓴 소설이라해서 민중 문학이 되고 노동자문학이 될 수는 없다. 아스라한 추억담을 담은 빨치산의 수기가 통일지향성 문학인가.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작가가 어떤 대상, 어떤 모습의 삶을 그렸느냐는 사실은 별로 중요할 것이 못된다. 그것은 작가가 어떤 소재를 다루었느냐는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그 모습에 어떤 질문을 어떤 형식으로 제기하고 물어 가느냐에 진정한 「문학다움」을 독자는 만끽하게 된다.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문학의 모습도 다양해야 한다. 자신의 자유로운 창작행위로 타인의 자유로움을 억압하려는 독선적 창작행위는 정치적 강요 못지 않게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강요로 군림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문학다움을 새롭게 펼칠 풍요로운 문화에의 기대는 비단 문학뿐만이 아닌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우리의 기대와 소망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문학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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