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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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홈 스위트 홈』의 작자 「존·하워드·펜」은 한번도 가정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가 이 노래를 지은 것은 파리에서 글자 그대로 엽전 한푼 없는 처량한 신세에 놓여 있을 때였다. 그는 한평생 아내도, 집도 없이 떠돌이생활을 했다. 그의 묘지는 워싱턴시의 오크언덕공동묘지에 있다. 세상을 떠나서야 비로소 안주할 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이 얘기는 1백년도 더 지난 때의 일이다. 그가 만일 오늘 서울쯤에서 살았다면 어떤 곡조의 노래를 지었을지 궁금하다.
집은 커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 한자풀이에 이런 얘기도 있다. 큰집은 옥이라 하고, 작은 집은 사라고 한다. 옥자는 시자와 지의 합자다.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자는 사람(인)이 길하다는 뜻이다. 작은 집에 살면 좋은 일이 많다는 얘기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새겨보면 숨은 뜻이 있는 것도 같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평 넓이에 1만원짜리 지폐를 한겹으로 펴놓으려면 모두 2백75장이 필요하다. 두겹으로 깔면 5백50장이다. 돈 값으로 5백50만원이다.
지금 서울강남 어느 동네의 아파트 값이 평당 대충 5백30만원 꼴이다. 그 아파트 평수에서 가로 16㎝, 세로 7.5㎝넓이를 떼어내면 그 값이 2만원이라는 얘기다. 1만원권 지폐 크기 말이다. 51평짜리 아파트가 2억7천5백만원이라니까 괜한 말이 아니다.
월 1백만원 봉급생활자가 꼬박 23년을 저축해야 하는 돈이다. 먹지도 입지도 말고, 물론 장가도 들지 말고 말이다. 50만원 봉급자는 45년분의 월급이다. 물론 그동안 집 값이 한푼도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해 본 궁리다.
집권당인 민정당은 오는 92년까지 2백만채의 주택을 짓는다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오죽 좋겠는가. 하지만 전문가들의 얘기는 그게 아니다. 90만 가구를 지어야 하는 서울주변에 우선 그럴만한 땅이 없다. 병풍에 그려본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아파트 값 올랐다 하면 국세청부터 생각하는데 그런 한가한 궁리로는 십년, 백년가도 집 없는 사람들에게 스위트 홈을 마련해 줄 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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