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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리어카 끌며 모은 전재산 400억, 학교에 기부한 노부부

중앙일보

입력

김영석(91)씨와 양영애(83·여)씨 부부가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400억원을 기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영석(91)씨와 양영애(83·여)씨 부부가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400억원을 기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노부부가 과일 장사로 시작해 평생 모은 전재산 400억원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한다. 고려대학교는 김영석(91)씨와 양영애(83)씨가 서울 청량리 소재 토지 5필지와 건물4동을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에 기부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시가 200억원 상당의 재산으로 부부는 향후 200억원 규모의 토지 6필지와 건물 4동을 추가로 기부할 예정이다. 지난 2007년 한 60대 여성이 익명으로 고려대 의료원에 4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이후 개인 기부로는 최고 액수에 속하는 기부 금액이다.

과일가게 했던 김영석(91), 양영애(83) 부부 #25일 400억 상당 재산 고려대에 기부하기로 #전차비 아끼려 매일 한시간 걸어과일 납품 #"초등학교도 못 나왔는데, 학교 기부해 뿌듯"

김씨는 강원도 평강군 남면에서 태어난 실향민이었다. 15살에 부모를 여읜 그는 17살에 “돈을 벌어오겠다”며 고향에 형제 둘을 두고 월남했다. 하지만 이후 6ㆍ25 전쟁이 터지며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부인 양씨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23살에 김씨와 결혼했다. 이들은 1960년대 초 서울 종로5가에서 리어카로 과일 노점 장사를 시작했다. 몇년 뒤에는 점포도 열었다.

부부의 과일가게는 ”과일 질이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번창했다. 이들은 다른 상인들보다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4시간을 일찍 움직여 과일 납품 트럭에서 과일을 받아갔고, 개점 후 3~4시간이면 과일이 모두 팔렸다. 김씨는 “당시 전차비를 아끼려고 과일 납품 트럭이 있는 청량리까지 1시간 거리를 매일 걸었다.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밤늦게 과일을 받으려 걷다가 통행금지 위반으로 잡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부부는 밥 먹을 돈도 아끼려 점포 인근 식당일을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었다.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대출을 얻은 부부는 1976년 청량리에 상가건물을 매입했다. 과일가게는 더 커졌고 대출금을 갚아가면서 상가 주변의 건물들도 하나씩 사들였다. 알뜰하게 모아던 재산이 어느덧 수백억대로 크게 늘었다. 이후 두 아들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가 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서 부부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학교에 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아들도 흔쾌히 부모의 결정에 동의했다고 한다. 최근 양씨가 뇌경색 진단을 받고, 김씨도 아흔을 넘기면서 부부는 기부를 서둘렀다. 고려대 관계자는 “처음 기부 의사를 전화로 전달받았을 때는 통상적인 기부라고 생각했었는데, 며칠 뒤 학교에 직접 방문하면서 사연을 말하시며 기부 액수를 밝혀 학교 관계자들이 많이 놀랐다”고 전했다.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에서 열린 기부행사에서 김씨는 휠체어를 타고 부인 양씨와 함께 참석했다. 부부는 “평생 돈을 쓰고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는데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쓸 수 있어 후련하고 뿌듯하다”는 뜻을 전했다. 부인 양씨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나같은 사람이 학교에 기부를 하게 돼 기쁘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힘이 되고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소중히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평생 동안 땀 흘리고 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기부한 두 분의 고귀한 마음에 감사드린다”며 “기부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학교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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