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핫라인] 겸손 … 한칸 낮춰 앉은 최태원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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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청와대가 재계 총수를 초청해 행사를 할 때는 총수의 자리 배치에 신경을 쓴다. 대개 자산이 많은 그룹의 총수를 대통령 좌석과 가까운 곳에 앉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30대 그룹(기업집단)의 자산 규모를 보면 삼성이 1위이고 다음은 현대.기아자동차, SK, LG의 순이다. 그런데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의 자리 배치때는 이 순서가 약간 바뀌었다. 우선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구속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따라서 '자산 순서'로 보면 이건희 삼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의 순서로 앉아야 한다. 하지만 이 회장 옆에는 구본무 LG 회장이 앉았고, LG보다 자산이 많은 SK의 최태원 회장은 그 다음 자리를 차지했다(사진).

LG와 SK 총수의 자리 배치를 놓고 정부도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구 회장은 최 회장보다 나이가 15세 많은 재계의 선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LG가 SK보다 자산이 많아 이런 고민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말 SK가 인천정유(현 SK인천정유)를 인수하면서 LG를 앞지르게 됐다. 하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다. SK가 54조8080억원, LG가 54조4320억원으로 SK가 LG보다 3760억원이 많다. 청와대와 정부는 결국 두 총수의 자리 배치를 놓고 재계와 사전 논의를 했다.

이에 SK그룹 측에서 "구 회장은 1993~95년 최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았을 때 부회장으로 함께 일 하셨던 분"이라며 "구 회장보다 상석에 앉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과 최 회장은 지난해 7월 20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수행인사 없이 단독으로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재계 현안에 대한 얘기를 나눌 정도로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청와대는 앞으로도 재계 초청 행사에서 구 회장-최 회장의 순서를 유지할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도 선.후배 간의 예의가 존재하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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