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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출몰한 라쿤, 먹이 찾아 수차례 식당 배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시내 한복판에 외래종인 라쿤(북미너구리)가 돌아다니는 장면이 포착됐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와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음식점 테라스 CCTV 카메라에 포착된 라쿤 영상을 25일 공개했다.
지난 9일 촬영된 이 영상에서 라쿤은 테라스 바닥과 식탁을 코로 훑으며 먹이를 찾는 행동을 보였다.

영상에 포착된 라쿤(북미너구리) [사진 어웨어]

영상에 포착된 라쿤(북미너구리) [사진 어웨어]

해당 라쿤은 이달 초부터 수차례 이 음식점 테라스에 나타났고, 창고에서 과자봉지를 뜯어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라쿤이 발견된 서교동 일대는 라쿤 카페가 밀집된 지역"이라며 "카메라에 잡힌 라쿤은 인근 라쿤 카페에서 탈출했거나, 개인이 기르다 유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라쿤 카페는 카페 한쪽에 라쿤이나 개 등을 사육하면서 고객들이 동물을 만지거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라쿤 카페에서는 라쿤을 번식시키기도 하고, 개인에게 분양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쿤 [중앙포토]

라쿤 [중앙포토]

유기된 라쿤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환경부가 이용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충남 부여군에서 한 마리가 포획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를 거쳐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다.
또, 4월에는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에서도 라쿤 카페에서 탈출한 라쿤이 포획돼 소유자에게 반환됐다.

제주도에서는 지난해 11월과 지난달 두 차례 라쿤이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됐다.
지난해 포획한 것은 야생동물구조센터 내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등 지나치게 난폭했고, 일반 분양도 어려워 안락사시켰다.
지난달 구조된 것도 다리가 절단된 상태로 발견됐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안락사시켰다.

이 대표는 "라쿤이 야생으로 나가 번식할 경우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일본에서는 1970년대 애완용으로 도입됐으나 야생화하면서 농작물과 목제 건물을 갉아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침입외래생물법에 의해 특정 외래생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아직 생태계교란종 등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한편, 이용득 의원은 지난 5월 라쿤 카페를 금지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카페·음식점 등 동물원이나 수족관으로 등록되지 않은 시설에서 포유류·조류·파충류·양서류에 속하는 야생동물의 전시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의원은 "라쿤과 사람의 무분별한 접촉은 라쿤 회충 등 인수공통전염병을 사람이나 동물에게 옮길 수 있고, 심각한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법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동물원 등록기준이 느슨해 이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동물원 등록기준은 10종 이상의 동물을 50마리 이상 기르면 동물원으로 등록할 수 있는데, 최소 면적 등의 기준이 없다.
이 대표는 "라쿤 유기 증가는 우리나라 생태계에 적색경보가 들어온 셈"이라며 "라쿤 같은 생태계 교란 위험 종은 애완용 사육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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