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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소모적 논란 부른 청와대의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는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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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어제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헌법과 우리 법률 체계에서 국가가 아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당은 정부가 23일 국무회의에서 ‘9·19 평양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남북군사합의서)’를 국회 동의 없이 심의·의결하자 헌법 60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 60조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條約),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등의 체결·비준에 대해선 국회가 동의권을 갖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김 대변인은 조약이라면 체결 주체가 국가이어야 하나 북한은 우리 헌법 및 법률체계에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평양선언이나 남북군사합의서는 조약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야당의 위험 주장은 “법리를 모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을 들어 ‘남북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임을 강조했다.

김 대변인의 해명은 위헌 논란보다는 또 다른 차원의 소모적인 법적·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헌법학자들 중에는 조약은 국가만 맺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펴고 있는 이가 적잖다. 실제로 한국전쟁 휴전협정 당사자는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이다. 김 대변인의 주장대로라면 국가가 아닌 북한도 휴전협정의 당사자로 참여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헌법상으론 한반도 미수복 지역, 국제법상으론 국가, 남북관계발전법상으론 특수관계라는 북한의 모순된 지위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김 대변인이 이 중 하나를 끄집어내 부각한 이유를 모르지는 않지만 어제 발언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불필요했다.

지금 상황에서 ‘헌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고, 그것도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서 강조하는 것은 국민에게 크나큰 혼선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 헌법체계상 국가도 아닌데, 왜 남북 정상회담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국민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런 논란에 앞서 헌법 60조의 정신은 국가 안보나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는 꼭 국회 동의를 받으라는 것임을 정부는 먼저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