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감꽃 피면 온동네 술렁~ '잊혀진 축제, 단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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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얘들아 단오가자
이순원 글, 이보름 그림
생각의나무, 164쪽, 8500원

단오는 언제 오나. 음력 5월 5일? 이건 단답형이다. '얘들아 단오가자'에서 소설가 이순원씨는 서술형으로 대답한다. "눈꽃이 지고, 그 가지 끝에 감꽃이 아름답게, 또 슬프게 피면 단오가 오지. 얼음꽃이 지고, 얼음꽃 피었던 앵두나무 끝에 붉은 열매 가득하면 단오가 오지. 종달새 높이 날던 푸른 보리밭이 어느새 황금물결로 일렁일 때, 그 밭둑가에 지천으로 산딸기가 익고 뽕나무의 오디 열매가 검붉게 익을 때, 우리가 기다리던 단오가 오지…."

나흘 있으면 단오(음력 5월 5일)다. 청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 뛰는 단오절 풍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씨처럼 "단오가자"라고 말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단오를 신나게, 몸과 마음으로 즐겼던 유년 시절의 기억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청유형의 문장이다.

"단오는 일 년에 딱 하루, 내가 태어난 대관령 아래의 산골마을을 벗어나 사람 많고 자동차 많은 강릉 시내 구경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 설빔과 추석빔은 얻어 입지 못하고 넘어가는 해가 있어도 단오빔은 한 해도 거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지난해 유네스코가 강릉 단오제를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에게 '단오의 힘'을 알려주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 '얘들아 단오가자'는 이제 '박제된 풍습'이 되다시피한 단오의 풍속과 정취를 동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주인공은 단오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열한살 소년 은수. 책은 은수의 눈을 빌어 폭설로 거동이 불가능한 겨울부터 눈꽃 지고 감꽃 피는 봄을 지나 청보리가 익어가는 초여름까지 단오맞이의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나간다.

단오를 앞두고 싹트는 기옥이 누나와 욱태 아저씨의 수줍은 사랑 이야기도 끼어든다. 은수의 어머니는 단오 한 달 전부터 신주(단오 때 제례 행사에 쓰는 술)를 빚기 위해 쌀 한 움큼을 칠사당에 바치고 온다. 또 깊은 산 속에서 수리취를 캐어 수리취떡을 만들고 잘 익은 앵두를 따 앵두편과 앵두화채를 만든다.

할머니는 창포 비녀를 꽂고 단오날 아침 굿당에 가서 가족들이 일년 내내 무탈하기를 빈다. 할아버지는 단오장에서 친구들에게 선물할 부채와 토시를 산다. 남자들은 씨름판에서 환호하고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렇듯 한 달 동안 벌어지는 단오제는 가슴 달뜨는 기다림으로 시작돼 다함께 어우러지는 흥겨움으로 막을 내린다. 즐거운 무엇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 '집단체험'이 온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단한 매듭이 됨은 물론이다.

우리 세시풍속에 대한 교육적 효과가 아니더라도 고운 글과 그림만으로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가의 서정적 문체는 대단히 섬세하고 아름답다.

수묵담채의 그림은 이에 화답하는 듯 산뜻한 분위기를 더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절로 이런 말이 입에 맴돌 듯 하다. "얘들아, 단오가자."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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