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외교 비전|풍부한 경험이 도리어 약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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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은 지금 행정부에 전문가들이 되돌아오고「레이건」행정부를 비난하는 표적이 됐던「이념적 아마추어리즘」의 퇴조를 환영하고 있다.
국민과 언론에 보다 직접적이고 지적 언어로 대화하겠다는「조지·부시」대통령의 의지는 환영받아 마땅하다.
「부시」대통령이 새 정부를 인선하고 있던 지난 2개월 동안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들에 홍보차원이 아니라 진지하게 답변했다는 사실에 미국국민들은 깊은 안도와 함께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누구라도 그런 답변을 다시 한번 더 듣게 된다면 많은 것을 용서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의 취임 후 정국운영에 대한 어떤 불만이 있다면 이는 아마 풍부한 외교경험을 갖고 있는「부시」와 그의 외교정책팀이 너무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은 진부한 지혜를 낳고 진부한 지혜는 필연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다.
경험은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이 부닥치는 심각한 문제들에 자신감을 갖도록 만든다.
대체로「부시」의 외교정책팀은 미소간 데탕트 및 군축시대에 관리로 성장해 온 사람들이다. 오늘날 모스크바의 외교정책은 데탕트시대에서 진화해 가고 있다.「부시」사람들은 여전히 옛 기반 위에 있다.
그러나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서이기는 하지만「고르바초프」소련서기장의 정치적 행위는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소련내부에서 그가 시작한 변화가 통제를 벗어나 파괴적이거나 사분 오열되는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인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또한 이것은 미국의 전문가 참모 진이 전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들은 쌍무 체제에 안정을 느끼고 따라서 소련이 그 목표를 달성하길 바라고 있다.
「고르바초프」정책은 동구에서 더 모험적이다.
「고르바초프」와 소련국민들은 마치 동구권이 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 힘에 겹고 개혁이 그들의 능력 밖에 있는 것처럼「스탈린」에 의해 잔인하게 형성돼 온 동구제국이 이제 멀리 가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으로도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동구지도자들에게 독자개혁의 필요성과 그들이 그 방법을 선택할 주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동구지도자들은 개혁자체가 그들을 권좌에서 쓸어낼 것이기 때문에 개혁의 물결을 막는데 관심이 쏠려 있다.
국민들의 관심도 개혁에 쏠려 있지 않고 기존체제에서 초현실적인 경제와 정치적 억압을 몰아내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더욱이 일반적인 분위기는 더 절망적이 돼 가고 있다.
경제는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특히 폴란드와 체코(유고에서도)에서는 젊은이들이 점점 더 흉포해지고 있다.
가위 폭발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거나 최소한 이를 이해하려는 조그만 생각조차도 서방측은 하고 있지 않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취한 정책은 소련의 동구지배라는 현상유지를 인정하고 심지어 이에 의존해 왔다.
이는「부시」의 전문가들이 공직에 있을「키신저」시대에「강대국으로 등장」한 소련에 미국이 대처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생각되던 때에 거의 분명했다.
오늘 현상유지는 유용한 선택이 아니다.
소련은 부상하는 강대국도, 확실한 강대국도 아니다. 소련은 지금 급격한 쇠퇴를 멈추려고 애쓰고 있다.
서유럽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힘에 있어 뒤쳐 져 있으며 90년대에는 동-서 유럽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전망은 독일문제를 다시 상기시켰다. 독일이 이것에 조화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전반적인 동서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때에「서방 동맹강화」만을 말할 수는 없다.
과거 동구에 대한 서독의 경제적 지배가 다시 정립되고 있다.「부시」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날 무렵 형성될 유럽단일시장으로 유럽은 아시아 전역이나 어쩌면 미국보다 더 큰 경제세력이 될 전망이다.
이들은「부시」행정부에게는 기본적인 도전요인들이고 미 정책결정 그룹에도 마찬가지다. 지금 만족스런 방안들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부시」는 선거 유세기간 중 연설문안작성자에게『비전이 있는 내용을 첨가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부시」행정부는 미국과 대화상대국에 신중하고도 전문적인 외교관계 행위를 제시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출범한다. 항상 부족한 것이지만 비전의 질이「부시」사람들 사이에 그다지 분명치 않다.
아직은 축하밴드와 불꽃놀이가 어울릴 취임 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부시」가 우리를 또다시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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